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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연봉 자리 거절한 퇴직 공무원, 마을에서 ‘인생 2막’ 찾는 이유는[서영아의 100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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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경퇴직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412회 작성일 21-08-2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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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스스로가 쓸모 있는 존재 돼야”
인구 35% 차지하는 50-70 신중년, 마을에 새 활력
선배 노인 돕고 손주 양육도 맡아주는 서포터 역할        
 2009년 대구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끝으로 39년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퇴직 고위공무원에게 으레 들어오는 민간기업의 영입 제안은 ‘쿨하게’ 거절했다. 억대 연봉에 기사 딸린 차가 나온다고 해도, 2~3년 대우받다 끝날 자리였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며 20년 이상 할 일을 찾으려 했던 그로서는 ‘아까운 인생’을 낭비할 수 없었다.

이렇게 새로 시작한 일이 은퇴자의 성공적인 삶을 돕는 비영리 활동(NPO)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사장되고 있는’ 한국 시니어 세대의 기운을 북돋워 고령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로서는 평생 공직에서 해온 일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박수천 시니어 서포터 회장(71)의 인생 2막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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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70이 마을 생태계를 바꾼다” 

지난 10여 년간 그의 직함은 실로 다양했다. 숭실대 삼육대 서울사이버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과천 시니어 아카데미, 시니어 코칭, 시니어 서포터, 시니어 클럽, 시니어 프로보노 공연단 등 많은 비영리단체 활동을 주도해 왔다. 요즘 가장 힘을 쏟는 일은 유튜브방송 ‘손잘TV’ 제작. ‘손잘’은 ‘손주 잘 키우자’를 줄인 말이다. 


토요일인 7일 오후 2시, 손잘TV 녹화가 진행되는 경기 과천청소년문화의집을 찾았다. 이날 시니어 4명분의 리허설과 녹화가 있었다. 박 회장은 현장에서는 ‘큐’ 사인을 주는 프로듀서 역할을 한다. 영상 녹화는 박송문(66) 총무가 맡았다. 그는 이 일을 해내기 위해 유튜브 촬영과 편집법을 거의 독학으로 익혔다고 한다. 인천에 사는 그는, “형님(박회장)이 오라 하면 어디든지 달려간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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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찾아본 방송은 ‘어린이의 날’ 노래가 오프닝 음악으로 사용되는 등 조금 촌스러운 분위기인데, 박 회장은 “뉴트로 분위기를 살렸다”고 큰소리친다. 주인공 1명마다 10분 안팎 길이로, 주인공과 사회자가 대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사회는 과천외고 방송반 학생들이 맡는다. 녹화일이 주로 토요일인 이유도 학생들 스케줄 때문이다.

“학생들이 제일 바빠요. 그 친구들 시간에 맞추느라 힘들어. 학원가야 하고 시험봐야 하고…. 우리가 시간이 많으니 맞춰야죠.”(박 회장)

양육이라 해서 육아비결을 다룬 유튜브일까 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서전의 동영상판에 후세에 대한 당부를 합친 것 같은 내용이다. 어르신들 각자의 애환과 사연이 구구절절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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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육 지혜 후대에 전하는 유튜브 방송 ‘손잘TV’ 


예컨대 6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던 김명진 씨 편. 그는 뒤늦게 자녀들과 함께 공부해 50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까지 받았는데 “아이들이 나를 키웠고 손자들은 나를 철들게 했다”고 말한다. 대학 입시에 합격한 엄마에게 아들은 “즐기면서 하시라”고 격려해줬다고 한다.

“대개 60~80대가 출연자들인데 공통점이 있어요. 6.25전쟁, 가난, 다자녀, 전통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고 이를 이겨낸 스토리라는 점이죠. 이런 성공 스토리에는 부모님의 가르침이나 가정의 전통, 양육의 지혜가 면면히 흐르고 있지요.”

손잘TV는 행정안전부의 지원에 힘입어 11월까지 50명분을 만들 예정이다. 그의 꿈은 더 크다. “노인의 지혜를 분야별로 묶어 유튜브 방송을 계속하면 빅데이터가 만들어지고 당대인들의 인생도서관이 될 수 있어요.” 그야말로 무명인들의 민중사다.

그는 시니어들의 기록유산을 남기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2014년부터 수년간 과천, 판교 등지에서 시니어들의 자서전 쓰기를 지도하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쓰시는 분도 있지만 못 쓰시는 분도 있고…. 그래서 책쓰기가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 ‘열폭 자서전’이란 것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생애를 10페이지에 사진과 함께 정리해 담는 방식인데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지요. 이건 ‘특허를 받아야 한다’는 권유도 많이 받았습니다.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열면 모두가 뿌듯해합니다.”

자서전 필자들을 중심으로 특정 주제를 모아 책을 내는 작업도 했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헤쳐온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이야기를 모은 ‘자손들과 함께 쓴 민초들의 고난극복현대사’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따로 모은 ‘위대한 어머니’ 같은 책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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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년 5070세대의 활력 살려야 젊은이도 산다 

그는 지난해 말 과천의 퇴직자 20여 명과 함께 ‘5070시니어포럼’을 만들고 마을공동체 발전을 위한 10대 과제를 선정해 발표했다. 젊은 시니어인 5070세대가 80세 이상 선배를 돌보고 30, 40대 후배를 후원하며 행정이 못 미치는 분야의 사회적 서비스를 맡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50~70세대가 한국 인구의 35%입니다. 아직 건강하고 능력도 스펙도 빵빵하죠.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분들을 너무 빨리 노인 취급을 해요. 이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시 불을 붙여줘야 합니다. 이들이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 잉여인구로 취급된다면 본인들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불행해집니다.”

-‘시니어들의 능력이 사장되고 있다’는 지적, 크게 공감합니다. 그런데 고용연장 같은 얘기는 ‘청년 일자리도 어렵다’는 반론에 밀려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노인과 청년, 지혜로운 공존의 길은 없을까요.

“생산인구가 줄고 고령자가 늘어난다고 걱정이 많은데, 5070은 생산인구로 활용할 수 있는 유력한 세대죠. 요즘 시니어들, 75세 정도까지는 일할 수 있어요. 게다가 이 분들이 일한다고 해도 젊은이들과 경쟁하는 분야는 아닐 겁니다. 시니어들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자녀들도 부담이 줄어듭니다. 50대에 회사에서 떨려나서 노령연금이나 기다리는 복지의 대상이 가득한 사회와 60, 70대까지 활기차게 일하고 세금도 납부하는 사회, 어느 쪽을 택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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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공존은 ‘손주 잘 돌보기’부터 

-젊은 노인이 선배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를 추진하신다고요.

“5070 세대는 위아래 세대를 연결하는 서포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우선 80세 이상 선배 노인을 보살피는 일에 가장 적합합니다. 물론 전문적인 돌봄은 요양보호사가 하겠지만 젊은 노인들이 그 전 단계 정도는 맡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홀몸노인의 외출을 돕고 말동무를 한다거나, 잠시 들러 물건을 사다 준다거나 하는 일이죠. 젊은이들은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5070 시니어가 노인 돌봄을 맡는 게 바람직한 분업 아닐까요. 이런 서비스를 취약계층에는 무상봉사로 해드리되 여유 있는 분들께는 실비 정도로 유료화해 젊은 노인들이 작은 수입을 얻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인구절벽이 경제 복지 산업 등 많은 분야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됩니다. 특히 청년세대가 결혼과 출산 자체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노인들이 손주 양육을 맡아줘야 한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사회 전체를 생각한다면 손주를 돌보고 자녀 세대의 사회 활동을 지원해주는 게 요즘 시니어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인 것 같습니다. 다만 가족간에 육아를 맡기더라도 보상은 어느 정도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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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에는 작더라도 남을 위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노년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년에도 꿈을 가져야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남을 위한 활동,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때 여럿이 함께하면 재미있고 쉬워지죠. 저도 지금까지 10여 년,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혼자 버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가장 나쁜 것은 나만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본인의 꿈은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는 시니어들이 늙어도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이 아니고 살던 집에서 끝까지 사는 노인마을공동체 생활(Aging In Place)을 보편화하고자 합니다. 이웃과 교류하며 ‘내 집에서 늙어가는’ 모델이죠. 인구 7만인 과천에서 시니어 모델 도시를 하나 만들면 좋겠어요.”

-자신의 인생 2막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후반전 삶이 이보다 더 보람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나답게 마음껏 할 수 있었고 그동안 축적된 역량을 다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나를 다 태워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서포터’가 제 역할입니다.” 


기사출처 : 동아일보 서영아 기자. 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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