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안전 지키는 일 내겐 각별…‘사회의 일원’이란 생각에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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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산 낭비’는 편견
충북 청주 솔밭초등학교 등굣길은 유난히 붐빈다. 재학생이 1800명이 넘는 데다 인근에 아파트 대단지와 상업시설까지 몰려 있어 교통량이 많다.
김기홍씨(82)는 5년째 솔밭초 교통 안전 지킴이를 하고 있다. 시니어클럽을 통해 찾은 노인일자리다. 11명이 조를 짜서 근무하는데, 조장인 김씨는 방학 기간 두 달을 제외하고 10개월간 주 5일 일한다. 업무시간은 오전 7시30분부터지만 늘 1시간쯤 먼저 와 청소를 한다.
지난 14일 오전 8시20분. “안녕하세요”라며 아이들이 김씨를 보고 줄줄이 인사를 한다. 교문 옆에 들어선 차에서는 수시로 아이들이 내리는데, 한 아이가 힘이 모자라 문을 열지 못하자 김씨가 달려가 내려준다. 눈코 뜰 새 없지만 김씨는 일분 일초가 아쉽다. 김씨는 “일하는 3시간이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가 받는 급여는 한 달 27만원이다. 조장을 맡고 29만원으로 올랐다. 일의 원동력은 아이들이다. 김씨는 “친손주보다 더 자주 보는 아이들이어서 내게는 정말 각별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학부모 한 분이 행운이 온다며 네잎 클로버 반지를 선물했다. 그 마음이 고마워 다시 아이들에게 건넸더니 “행운이 할아버지에게 갔으면 좋겠다”며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매일 아침 나와줘서 든든하고 고마워요.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앞으로도 계속 봤으면 좋겠어요.” 김씨에게 종종 편지를 건네는 김하윤양(5학년·가명)의 말이다.
김씨에게 이 일은 각별하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한다. 2년 전에는 관할 구청에 민원을 넣어 학교 앞 신호등 옆에 가드레일이 설치되도록 했다. 김씨는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일하고 나면 ‘나도 사회의 일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하고 싶어요.”
■공공 일자리 참여 어르신 77% “만족”
공동주택 아이스팩 재활용
24명이 4개조 격일 3시간
매달 열흘 일하면 27만원
재활용팩은 소상공인에게
“노인도 지역사회에 역할
기회 차단하면 고립 가중”
서울 은평구에 있는 백경순씨(72)의 일터도 오전이 분주하다. 사용한 아이스팩을 깨끗이 씻고 소독해 재포장하는 게 백씨의 일이다. 미세플라스틱 성분의 ‘젤형’ 아이스팩을 재활용해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취지로 만든 노인일자리다. 작업장은 경로당이다. 백씨가 입구에서 아이스팩이 가득 담긴 15㎏짜리 쌀포대를 끌어오면 안영락씨(84)는 개수대에 물을 받고 친환경 세제를 푼다. 나선임씨(80)는 백씨가 끌고 온 포대를 함께 들고 개수대에 아이스팩을 쏟아낸다.
자외선 살균소독기에서 소독이 끝난 아이스팩을 옮겨 담고 포장하는 일은 강숙자씨(74)와 김다혜자씨(78) 몫이다. 수거조와 배송조는 따로 있다. 수거조 2명이 경차를 몰고 은평구 내 아파트 단지 다섯 곳을 돌며 아이스팩을 모아 온다. 경로당 작업조가 선별·세척·소독을 하면 배송조 2명이 지역 소상공인에게 전달하는 구조다. 24명이 ‘공동주택 아이스팩 더쓰임 챌린지’ 멤버로 참여하는데 총 4개조가 각각 오전과 오후, 격일로 출근해 3시간씩 작업을 한다. 하루에 경로당 작업장에서 200개가량의 아이스팩이 이들 손을 거쳐 재탄생한다.
지난 19일. 포장 공정을 맡은 김다혜자씨는 살균이 끝난 아이스팩 150여개를 크기별로 분류해 이삿짐 박스에 옮겨 담았다. 여든 가까운 나이에 3시간 동안 한자리에 서서 허리를 반복해서 굽혔다 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은 하루 3시간씩 매달 열흘 일하고 27만원을 받는다. 나선임씨는 “노인들은 잘 써주지 않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으로 좋다”고 말했다.
재활용 아이스팩은 소상공인에게도 보탬이 된다. 은평구에서 떡볶이 간편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한지은씨(38)는 사업 수혜자로 선정돼 매달 200여개의 재활용 아이스팩을 무료로 받는다. 한씨는 “재활용 팩을 쓰니까 받는 입장에서도 죄책감이 덜해 좋아하는 손님도 많다”고 말했다.
이들 일자리는 노인일자리 중 공공형(공익활동)에 속한다. 프로그램이 달라도 공공형 노인일자리의 월평균 활동시간(30시간)과 급여(27만원) 수준은 동일하다. 급여는 높지 않지만 효능감이 높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한국노인인력개발원, 2020)에서 노인 77.3%가 ‘스스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답했다. 수요가 많아 해마다 일자리는 늘어난다. 2019년 51만7000개였던 공공형 일자리 사업 목표량은 올해 60만8000개로 증가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공공형 중심의 노인일자리를 시장형으로 재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공형 일자리를 수익을 내는 민간형 사업으로 바꾸겠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노인일자리 사업은 단순 예산 낭비 사업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하지만 공공형 노인일자리 사업이 만들어내는 공익적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층은 젊은층에 비해 육체적으로 제한은 있지만, 그것이 이들이 반드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지역사회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기여가 분명 있는데 단기적인 비용 관점에서 그 기회를 차단하면 오히려 이들을 고립시켜 더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출처: 경향신문, 반기웅 이창준 기자,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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