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시간'이 되어버린 50대의 자소서 쓰기
페이지 정보
본문
[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빵집에서 잘리고 난 뒤 구직의 시간... 드디어 연락이 왔다
1월에 하루 아침에 다니던 빵집 알바 자리를 잘렸다.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우선 한 호흡을 쉬기로 했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다보면 호흡법이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처음 수업을 가면 선생님은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는 법부터 가르쳐 주신다. 그런데 여기서 들숨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혹은 때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내쉬는 숨이다.
숨을 내쉰다는 건 그저 숨을 뱉는다는 것이 아니다. 숨을 뱉어내면서 근육을 이완, 온 몸의 긴장을 풀어내는 과정이다. 앉아서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상체를 구부리는 간단한 동작, 이때 몸을 얼마나 잘 이완시키는가에 따라 그 구부리는 정도가 달라진다.
숨을 편하게 내뱉으면서 자신의 몸에 긴장을 푸는 과정, 겨우 하나, 둘...... 몇 호흡에 지나지 않는 '순간'임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숨을 편하게 내뱉을수록 동작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 <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인생 3기 (the third age)의 시작은 '자소서'부터 |
알바 자리를 잘리고 꼴랑 한 달치 알바비를 가지고 여유를 부리게 된 건 지난 일년간 달려왔던 내 자신의 궤도를 새로이 점검해보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마치 요가의 동작처럼 들이쉰 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풀며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불과 몇 년 전, 아이들이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즈음 아이들을 키우는데 전력해왔던 나는 방자하게도(?) 세상에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했었다. 마치 그런 나의 오만한 생각에 하늘이 응답한 듯 롤러코스터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낼 모레 육십이라며 다 산 것처럼 굴던 나는 본의 아니게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인스타에서 봤던 글귀 중에 그런 게 있다. 아흔 넘은 노인의 고백이었다. 환갑이 되도록 열심히 일하고 퇴직을 하게 된 노인은 그 후로 내내 허송세월을 했다고 후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을 기다리며 지나온 세월이 인생의 1/3이 넘는 삼십여 년이나 되었다니. 두 아이들이 제 몫을 하게 되자 인생 다 산 것처럼 굴던 나 역시도 노인과 다르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 몇 십 년을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며 사셨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100세를 사는 게 무색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길고 긴 노년의 시기는 초로기와 스스로 자신을 돌보기 힘든 노쇄기로 다시 나뉘어졌다. 영국의 사회철학자 피터 라스렛(Peter Laslett)은 1989년 발간한 그의 책 <인생의 신선한 지도>에서 직장에서 물러나 거동이 불편해지기까지를 인생의 제 3기(the third age), 자기 성취(personal achievement)의 시기라고 정의했다. 즉 예전과 달리 건강하게 오래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의무'를 넘어 개인적 성취와 만족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남들이 평생 일하고 여유롭게 퇴직할 위치인 것과 달리, 맨 땅에 헤딩하듯 호구지책이라는 짐이 얹혀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거두어야 할 '자식'도, '남편'도 없으니, 정말 나 하나 잘 챙기면 되는 처지였다. 작년 일년 동안 허겁지겁 '호구지책'을 면하기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 이완의 시간을 거치며 조금 더 인생의 3기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장황했지만, 나는 도너츠도 잘 튀기고, 빵에 크림도 잘 넣지만, 그게 내 최선의 '달란트'일까 하는 것이다. talent, 달란트는 거래할 때 화폐의 단위로 쓰이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재능이나 능력을 뜻한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각 개인이 저마다 지닌 '달란트'가 있다는 말은 어쩐지 그럴 듯하게 여겨졌다.
남은 1월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추수린 나는 2월 들어 본격적으로 나의 '달란트' 탐구에 들어갔다. 말이 거창하니 달란트 탐구지, 실직자로서 워크넷, 알바*, 알바** 등에 등록하고, 날마다 올라오는 취업 정보와 구인 정보를 섭렵하고 신청, 응시하는 과정이었다.
비록 나이는 낼 모레 육십이지만, 아직은 사회적으로 내가 쓰임이 될 만한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새삼스레 이 나이에 이력서도 쓰고, 자기 소개서도 쓰는 상황이 벌어졌다. 요즘 취업 전쟁에 내몰린 젊은 세대들 사이에 자조적으로 도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른바 자소서를 100장쯤 쓰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쯤이야 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나이에 자소서라니
100장까지는 아니지만 몇 십 장 정도 닥치는 대로 이력서도 쓰고, 자소서도 썼다. 그런데 참 묘한 게 그걸 쓰다보니, 내가, 내가 살아온 시간이 그대로 드러났다. 처음 이력서를 쓰면서 통탄했다. 아니 왜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정부 공인 자격증 하나 따놓지 않고 뭐하며 살았을까, 이러고 말이다. 사회복지사며, 교사 자격증이며 그런 자격증 하나 없이 지원하려니 뭐 하나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없었다.
대학 때 교직 시간에 제일 앞자리에서 대놓고 졸지 말 걸 하고 새삼 후회가 됐다. 어른들이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들었던 교직,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30% 정원제라 따논 당상으로 나는 잘렸었다. 교직 이수도 못한 사학 전공에, 부전공이 정치요, 가장 많이 들은 과목이 사회학이라니, 정말 현실감각이라고는 젬병인 이수과목들 아닌가.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내팽개친 교직 이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마흔 무렵부터 이 나이가 되도록 해왔던 일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졸지에 자소서를 쓰는 시간이 내 짧은 젊은 날의 소견이 인생을 참 고달프게 만들었구나 하는 참회의 시간이 돼 버렸다.
또한 이력서를 넣는 기관마다 양식이 다 다른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디든 나의 강점과 약점을 쓰라는데, 저렇게 번듯한 자격증 하나 없는게 나의 약점이라면, 그래도 마흔 무렵부터 이렇게 저렇게 해온 수업들이 그래도 내 나름의 내공이 되었구나 싶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지만 저 영양가없는 사학과 정치학과 사회학이라는 취향이 '인문학'이라는 나의 베이스가 되어주었구나 하는 자기 면피를 하기도.
그나저나 오십 후반에 딴 그림책 심리지도사까지 사설 자격증만 즐비하고, 국가공인 자격증 하나 없는 낼 모레 육십의 나를 거둬줄 곳이 있을까.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며 회의감이 내 뒤통수를 당겼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고 날마다 쓰고 또 썼다. 그렇게 2월 중반이 넘어가도록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나의 성장 환경과 강점과 약점을 몇 십 개씩 쓴 결과, 그래도 연락이 왔다.
불과 몇 년 전, 아이들이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즈음 아이들을 키우는데 전력해왔던 나는 방자하게도(?) 세상에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했었다. 마치 그런 나의 오만한 생각에 하늘이 응답한 듯 롤러코스터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낼 모레 육십이라며 다 산 것처럼 굴던 나는 본의 아니게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인스타에서 봤던 글귀 중에 그런 게 있다. 아흔 넘은 노인의 고백이었다. 환갑이 되도록 열심히 일하고 퇴직을 하게 된 노인은 그 후로 내내 허송세월을 했다고 후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을 기다리며 지나온 세월이 인생의 1/3이 넘는 삼십여 년이나 되었다니. 두 아이들이 제 몫을 하게 되자 인생 다 산 것처럼 굴던 나 역시도 노인과 다르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 몇 십 년을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며 사셨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100세를 사는 게 무색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길고 긴 노년의 시기는 초로기와 스스로 자신을 돌보기 힘든 노쇄기로 다시 나뉘어졌다. 영국의 사회철학자 피터 라스렛(Peter Laslett)은 1989년 발간한 그의 책 <인생의 신선한 지도>에서 직장에서 물러나 거동이 불편해지기까지를 인생의 제 3기(the third age), 자기 성취(personal achievement)의 시기라고 정의했다. 즉 예전과 달리 건강하게 오래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의무'를 넘어 개인적 성취와 만족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남들이 평생 일하고 여유롭게 퇴직할 위치인 것과 달리, 맨 땅에 헤딩하듯 호구지책이라는 짐이 얹혀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거두어야 할 '자식'도, '남편'도 없으니, 정말 나 하나 잘 챙기면 되는 처지였다. 작년 일년 동안 허겁지겁 '호구지책'을 면하기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 이완의 시간을 거치며 조금 더 인생의 3기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장황했지만, 나는 도너츠도 잘 튀기고, 빵에 크림도 잘 넣지만, 그게 내 최선의 '달란트'일까 하는 것이다. talent, 달란트는 거래할 때 화폐의 단위로 쓰이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재능이나 능력을 뜻한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각 개인이 저마다 지닌 '달란트'가 있다는 말은 어쩐지 그럴 듯하게 여겨졌다.
남은 1월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추수린 나는 2월 들어 본격적으로 나의 '달란트' 탐구에 들어갔다. 말이 거창하니 달란트 탐구지, 실직자로서 워크넷, 알바*, 알바** 등에 등록하고, 날마다 올라오는 취업 정보와 구인 정보를 섭렵하고 신청, 응시하는 과정이었다.
비록 나이는 낼 모레 육십이지만, 아직은 사회적으로 내가 쓰임이 될 만한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새삼스레 이 나이에 이력서도 쓰고, 자기 소개서도 쓰는 상황이 벌어졌다. 요즘 취업 전쟁에 내몰린 젊은 세대들 사이에 자조적으로 도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른바 자소서를 100장쯤 쓰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쯤이야 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 |
ⓒ 이정희 |
이 나이에 자소서라니
100장까지는 아니지만 몇 십 장 정도 닥치는 대로 이력서도 쓰고, 자소서도 썼다. 그런데 참 묘한 게 그걸 쓰다보니, 내가, 내가 살아온 시간이 그대로 드러났다. 처음 이력서를 쓰면서 통탄했다. 아니 왜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정부 공인 자격증 하나 따놓지 않고 뭐하며 살았을까, 이러고 말이다. 사회복지사며, 교사 자격증이며 그런 자격증 하나 없이 지원하려니 뭐 하나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없었다.
대학 때 교직 시간에 제일 앞자리에서 대놓고 졸지 말 걸 하고 새삼 후회가 됐다. 어른들이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들었던 교직,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30% 정원제라 따논 당상으로 나는 잘렸었다. 교직 이수도 못한 사학 전공에, 부전공이 정치요, 가장 많이 들은 과목이 사회학이라니, 정말 현실감각이라고는 젬병인 이수과목들 아닌가.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내팽개친 교직 이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마흔 무렵부터 이 나이가 되도록 해왔던 일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졸지에 자소서를 쓰는 시간이 내 짧은 젊은 날의 소견이 인생을 참 고달프게 만들었구나 하는 참회의 시간이 돼 버렸다.
또한 이력서를 넣는 기관마다 양식이 다 다른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디든 나의 강점과 약점을 쓰라는데, 저렇게 번듯한 자격증 하나 없는게 나의 약점이라면, 그래도 마흔 무렵부터 이렇게 저렇게 해온 수업들이 그래도 내 나름의 내공이 되었구나 싶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지만 저 영양가없는 사학과 정치학과 사회학이라는 취향이 '인문학'이라는 나의 베이스가 되어주었구나 하는 자기 면피를 하기도.
그나저나 오십 후반에 딴 그림책 심리지도사까지 사설 자격증만 즐비하고, 국가공인 자격증 하나 없는 낼 모레 육십의 나를 거둬줄 곳이 있을까.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며 회의감이 내 뒤통수를 당겼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고 날마다 쓰고 또 썼다. 그렇게 2월 중반이 넘어가도록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나의 성장 환경과 강점과 약점을 몇 십 개씩 쓴 결과, 그래도 연락이 왔다.
기사출처: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2023.03.07
해양경찰퇴직지원센터 취업뉴스의 저작권은 해당언론사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링크
- 이전글일하는 노인 10년새 2배…60세 이상 고용률 2월 기준 최고 23.03.20
- 다음글강릉시, 찾아가는 일자리상담실 확대 운영 23.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