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발상의 전환, ‘도시농업 크리에이터’ ...이은수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 >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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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니어] 발상의 전환, ‘도시농업 크리에이터’ ...이은수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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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경퇴직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294회 작성일 23-06-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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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그게 제 철학이에요.
저는 생일이 없어요. 매일이 생일인데 뭘 따로 하루만 정해서...
어제는 없다. 내일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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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이상수 기자] 화장품회사 재무관리, 통신선로 회사설립, 도시형주택사업을 거쳐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를 만들어 도시농업 관련해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은수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는 50대 후반이지만 30대의 열정으로 사업과 비전을 말했다

Q.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는 어떤 사업을 하는 곳인가?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는 독립된 단체로 활동하지만 동시에 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서울시도시농업전문가협회와 같은 여러 기관단체와 연결해 다양한 협업을 하기도 한다. 가치공유와 프로그램 공유를 통해서 정책 입안이 있을 때 공동 제안을 하기도 한다.

2012년도에 도시농업네트워크를 만들고, 2014년에 회원이 200여 명이 되는 비영리민간단체로 발전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구체적인 사업은 노원구청뿐만 아니라 서울시와 환경부 등 정부 부처에 공모나 관련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여 실행하고 있는데, 도시농부학교, 환경보호활동가과정, 도시농업전문가과정, 도시 양봉, 허브 재배, 음식재활용교육 등 다양하다.


도시농업...먹거리에서 볼거리로

Q. 도시농업의 전망은 어떤가?


지금 도시농업은 3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1기는 2007년부터 귀농귀촌운동본부에서 도시농업을 시작했을 때이고, 2기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고 서울시 주도로 도시농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때이다. 양적으로 팽창했던 시기다. 지금은 지원이 많이 줄고 있고,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공모사업 등이 많이 없어지면서 관련 단체들이 많이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실을 갖춰온 단체 중심으로 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도시농업 하면 텃밭 정도를 생각하지만, 앞으로는 정원이나 화훼 사업 쪽으로 방향이 전환될 것이다.

도시농업도 소득 수준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소득 수준 3천 6백만원을 기준으로 이전에는 채소 위주의 단작 중심이었으나, 삶이 좀 더 윤택해지면서 먹거리에서 볼거리로 관심이 바뀔 것이다. 허브나 커뮤니티가든 형식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리고 텃밭에 채소 키우기 중심인 도시농업은 호불호가 심하다. 참여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이나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다. 커뮤니티가든이 만들어지면 많은 일반인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 시민 참여도가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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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활동가 수업중

도시농업, 발상전환으로...일자리, 창업창직 무궁무진

Q. 도시농업이 중장년 일자리나 창업 창직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사례가 있다면?


굉장히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서부 개척 시대에 말 타고 가며, 깃발을 꽂으면 그곳이 내 땅이 되는 것과 같은 분야다. 그러나 똑같은 생각을 하면 안 되고, 비틀어야 한다. 사례는 많지만 하나만 예를 들어보겠다. 도시농부학교에서 시작하여 ‘하늘나무’라는 회사를 만든 친구가 있다. 손재주가 많은 이 친구는 농업 관련 도구를 만들다가 농업기술센터 같은 곳의 시설도 만들기 시작했다. 손재주에다 컨셉 좋고 성실하고 기동력도 좋아 사업이 일취월장했다. 도시농업과 자기 재주가 맞아떨어져 성공한 것이다. 지금은 기술연구소도 만들어 하늘나무와 함께 법인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도시농업을 우리가 흔히 채소 키우는 거로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 범위는 생각의 유연성에 따라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특히 도시농업사업은 개인이 하기엔 힘들고 대기업이 하기엔 어정쩡한 그 중간의 어딘가에 틈새시장이 있다. 더군다나 큰 자본 들이지 않고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참 많다.

며칠 전에도 학교에 정원을 꾸미는 사업이 있어 갔다 왔다. 발상의 전환만 하면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제조업, 통신업, 도시농업...반딧불이 이끌어 준 길을 따라

Q. 도시농업 관련 사업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가?


90년대 초 라미화장품의 재무회계 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상장회사인 관계로 재무관리팀에서 주식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주주총회할 때가 제일 신경 많이 쓰였다. 왜냐하면 주주총회가 무사히 지나가야 하는데, 괜히 누군가 방해를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하면 경영진 모두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주총회를 빨리 그리고 원활하게 끝내는 게 최고의 목표였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발생한다. 어떨 때는 주식 한 주 가진 분이 오셔서 감 놔라 배 놔라 하셔서 애를 먹었다. 당연한 권리지만 담당 직원들은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조율해야 한다. 그 무서운 IMF 상황도 잘지나 갔지만, 더 이상 회사에 있어야 할 이유를 못 느껴 사표를 냈다. 그러나 회사는 3개월이나 출근을 안 했지만, 월급을 계속 지급하며 사직 처리를 하지 않았다. 내가 직장에서 신임을 얻고 있었다고 느꼈다.

그다음 직장은 정보통신 관련회사였다. 막 정보통신 분야가 뜨고, 인터넷망이 확산하면서 부상하고 있었던 통신선로 시설회사였다. 처음엔 영업과와 지원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게 선로 시설 일을 맡겼다. 선로 설치일을 하다 보니 내가 팀을 만들어 사업 형태로 만들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독립하여 통신선로 설치사업을 5년 했다.

이 대표는 원래 다음 일 알아보고 현재 일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통신선로 일은 내게 다음 일에 대한 복선을 깔아 주었다. 보통 통신선로는 지하나 옥상을 통해 설치된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지하와 옥상은 그저 창고로 쓰이거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이곳을 활용할 무엇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게 나중에 도시농업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에겐 선로설치 일에 한가지 핸디캡이 있었다. 바로 기술이었다. 어느 순간, 이 기술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한계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럴 땐 좌고우면하면 안 된다. 적자가 나기 전에 직원을 모아놓고 상항을 이야기하고 정리했다.

사업을 정리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희미하지만, 나를 부르는 반딧불을 따라갔다. 그 당시 정부에서는 도시형 생활주택을 장려하고 있었다. 사업으로 모은 돈을 가지고 이거다 싶어 작은 5층 건물을 마련했다. 작지만 꾸준한 원룸 수입이 생겨 영리적 사업보다는 이제는 가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 건물도 옥상은 비어 있었다. 그곳에 화분을 갖다 놓고 이것저것을 심어보고 꾸며보았지만 잘되지 않았다. 왜라는 고민을 하던 차에 도시농부학교 관련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농업 운동이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와 옥상 식물 키우기, 빗물 모아쓰기,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등을 키워드로 하는 도시농업네트워크를 시작하게 되었다.

 

성공, 돈보다 행복...오늘을 가치 있게 잘 사는 것

Q. 인생 이모작이 성공적인 것으로 보는가? 인생의 성공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모르니 오늘을 잘사는 것, 오늘이 가장 행복한 것이 내 철학이다. 성공의 기준도 간단했다.

어렸을 때 가정형편이 매우 안 좋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녔다. 구두도 닦았다.

이 대표는 "그때 난 생각했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주저 없이 지원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아빠라면 그것이 성공일 거로 생각했고 그게 목표였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다행히도 집사람과 맞벌이하면서 아이들 공부하고 싶은 것 다 지원해 주고, 대학도 가고, 모두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면 됐다.

그리고 생각의 기준이 돈에서 행복으로 갔으니 성공한 거다.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가치 있는 활동을 하면서 사람과 자연에 베풀 수 있으니 행복하고 성공한 것이다.

오히려 돈에 집착하지 않고 가치 있는 삶을 생각하고 실천하니 지난 10년 동안 한해 두 배씩 성장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으니, 내년에 안식년을 가지고 여행하면서 쉬고 싶다. 그렇게 쉬고 나서 또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

‘도시농업 크리에이터’...판을 흔들어 틈새를 찾아라.

Q.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분들에게 해 주실 말씀은?


첫째는 과거 명함에서 벗어나 판을 흔들어 보라는 것이다. 과거의 명함을 버리고 리셋해야 한다. 명함이라는 작은 테두리 안에 있을 때는 그것이 가치 있었지만 이미 그 명함은 없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회제도와 관행과 같은 정형화된 판을 흔들어 보아야 한다. 그렇게 막 흔들어 보면 반드시 틈새가 생긴다. 그 틈새가 처음엔 아주 작지만,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집중 공략을 하면 틈이 더 커지면서 빛이 보이게 된다. 사무직에 있었던 사람도 힘이 있다면 내게 맞는 고급스러운 일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막일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육체적인 일을 하다 보면 나의 옛 직업과 매칭되는 것이 생긴다. 거기가 틈새다.

판을 흔들어 보라는 것은 작은 틈새를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생각의 전환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시농업은 도시와 농업의 결합이다. 사람들은 모두 도시보다는 농업에 집중했다. 나는 생각을 도시에 치중했다. 그게 정답이었다. 도시에 농사를 단순 더하기 하면 안 된다. 도시형 농사여야 한다.

둘째는 1+1은 2가 아니라 3, 4…. 10일 될 수도 있다는 마인드다. 단기간에 결과를 내려고 승부를 걸다간 일을 망친다. 크게 보면 나의 사업주기는 10년에서 15년이었다. 그 정도 가야 무엇이든 결과가 나온다. 물론 나이가 들면 조바심이 나지만 그럴수록 호흡을 길게 해야 한다. 처음엔 어두컴컴하지만, 방향을 정하고 묵묵히 가다 보면 희미한 불빛이 보이고 그곳을 향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선두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나를 ‘도시농업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한다. 하나, 둘 도시농업 관련 사업을 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다양한 콘텐츠가 늘어났다. 이것에 자본을 투자한 것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 콘텐츠가 늘어나다 보니 강의 문의도 많아졌다. 강사로서의 커리어가 쌓이면서 강의료도 올라가니 재밌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다시 새로운 일이 생기니 일석이조, 일석삼조다.

이제 이은수 대표의 눈은 숲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70%를 차지하는 숲이 그의 새로운 도전 장소가 될 것 같다. 곧 숲 해설가 준비를 마친 그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기사 출처 : 이모작뉴스, 이상수 기자,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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