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주류 60대로 급격히 이동… 구조개혁 서둘러야 [심층기획-'저성장의 늪' 기로에 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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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0대 고용보험 가입 감소세 전환
구직난 속 구인난… 고용 미스매치 심화
고용문제 못 풀면 ‘생산성 반등’ 어려워
“노동시장 ‘이중구조’ 격차 해소책 시급”
정부 ‘주 52시간’ 근로시간 유연화 추진
“장시간 근로 해소… 노동생산성 높일 것”
이중구조 개선·정년제도 개편도 속도
“노사정 대타협 이뤄야 저성장 기조 탈피”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10월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내린 진단이다. IMF는 당시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동과 연금에 관한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주문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한국이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지 않으면 노동시장의 활력이 떨어지고 연금 지출은 늘어나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인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해 5월 “구조개혁 없이 재정·통화 등 단기 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이례적인 쓴소리를 내뱉었다.
개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동안 시장에서는 이미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40대는 통계적으로 감소세에 진입했고, 경제 성장의 동력인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저출생·고령화가 가속화할수록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의 여력마저 감소하기에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개혁은 저출생·고령화 국면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히지만, 개혁과제마다 노사정이 충돌하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구직자들이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노동생산성 반등 어려워
코로나19 사태 이후 ‘성장’과 ‘물가’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저출산·고령화는 한국 경제의 회복탄력성을 떨어뜨리며 장기적인 침체로 유인하고 있다. 이미 OECD 꼴찌 수준으로 추락한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개혁을 시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16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23 대한민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37개 회원국 중 33위에 머물렀다. 노동시간당 부가가치를 나타내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9.4달러다. OECD 평균(64.7달러)에 미치지 못한 것은 물론,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출산·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53.2달러)과 비교해도 한참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노동생산성을 반등시키기 어려운 인구구조에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전개되며 한국 노동시장의 주류는 40대에서 60대 이상 노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노동시장 동향’에서 40대 고용보험 가입자는 지난해 11월 감소세로 전환했는데,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8년 이후 처음이다. 반면 50대와 60대의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세는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의 노동개혁 과제 중 하나인 정년제도 개편이 속도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급증하는 60대 이상의 근로자들은 불안정한 단기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청년층의 문제는 보다 다층적이다. 29세 이하 고용보험 가입자는 2022년부터 일찌감치 감소세로 접어들었는데, 일할 의지가 없는 ‘쉬었음’ 인구 역시 20∼30대를 중심으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방의 제조업에선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는 ‘빈 일자리’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데, 노동시장에 진입할 청년세대는 줄어드는 ‘미스매치’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16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구직자가 직업능력개발 훈련 등의 수강증명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이 같은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벌어지며 구직수요와 구인수요가 맞물리지 못하고 엇나가는 것이다. 특히 청년세대의 구직난은 당면한 저출산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다. 결국 청년과 노인의 고용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저출산·고령화 국면에서 노동생산성을 반등시키기도 어려운 셈이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노동생산성에서도 두드러지고 있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노동생산성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개선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궁극적으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인 만큼, 격차 해소를 위한 측면에서도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시간 개편 논의에 속도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노동·교육·연금과 같은 사회 3대 개혁을 거론하며 노동을 첫 번째로 꼽았다. 정부는 지난해 노동개혁을 추진하며 ‘노사 법치주의’를 내세웠다. 노동계 회계 투명성 강화는 이끌어냈지만, 주요 개혁과제인 근로시간 개편, 이중구조 해소 등의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이른바 ‘주 최대 69시간제’ 논란 탓에 여론 반발이 컸었는데 이후 대법원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7일 연장근로 시간을 판단할 때 ‘1주 40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주 단위나 ‘1일 8시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두고 해석이 혼재했는데, 대법원 판결로 근로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는 정부에 힘이 실린 셈이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판결은 장시간 근로를 허용한다기보다 주 52시간 한도 내에서 근로시간 배분을 조금 더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제도 개편에 대해서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한 후에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기본적으로 저희는 근로시간 제도 개선 추진을 할 때 장시간 근로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달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근로시간 개편안을 상반기 중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 역시 지난달 ‘노동의 미래 포럼’에서 “정부는 동 판결을 계기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지난해 2월 출범한 상생 임금위원회는 조만간 권고문을 내놓을 전망이다. 정부는 기존의 호봉제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고착화한다는 진단을 바탕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적용하는 방향의 개편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한국의 초고령사회 진입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정년제도 개편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년 관련 논의 필요성은 노사정이 모두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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