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임계장을 위한 나라는...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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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머슴. 실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다. ‘고려대 국어사전’에 의하면 “이전에, 부농이나 지주에게 고용되어 그 집의 농사일이나 잡일을 해 주고 품삯을 받는 사내를
이르던 말”이다. 주로 옛날이야기나 문학 작품, 혹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들어본 말이기도 하다.
허구의 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에서 내가 이 단어를 들어본 건 약 20년 전 한보 정태수 회장이 회사 임원에게 ‘머슴’이라고 불렀던 이후로는 처음이다.
서울 강북의 모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을 ‘머슴’ 취급했다. 그 경비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고. 한 생명이 세상을 등진 뒤에야 사람들은 자기의 모습을 돌아본다.
그런데 이 죽음 이전에도 아파트 경비원이 부당한 대우 때문에 자살한 사건들이 있었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약자에게 가해진 강자의 갑질에 분노했었다.
다만 그때뿐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경비원이 세상을 스스로 등진 뉴스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어떤 이는 경비원들의 ‘불안정한 고용구조’를 지적한다.
어떤 이는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상대적 강자의 갑질에 분노한다.
한편,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내게는 불안정한 노년 노동시장을 들여다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노동연구원 연구에 의하면 노동시장에서 완전 은퇴를 위한 경제적 준비가 완료되었거나 준비 중인 사람들은 전체 중장년의 41.4%라고 한다.
물론 은퇴연령이 되기 전에 연금을 조기에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 소액에 그쳐서 노후 안전망으로서는 아직 부족하다.
통계가 말하듯 상당수 중장년이 준비를 채 하지도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한다. 그들 상당수는 ‘임계장’과 비슷한 길을 밟으며 ‘계약직 노인 노동자’의 삶을 전전한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로 ‘임계장 이야기’를 쓴 실제 저자가 버스터미널에서 일할 때 주변에서 그를 부르던 이름이다.
저자 ‘조정진’은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공기업 사무직으로 38년간 일하다 퇴직한 60세 노동자이다.
‘임계장 이야기’는 그가 생계를 위해 시급 노동의 세계에 뛰어들면서 쓰기 시작한 노동일지로 3년간 아파트, 빌딩, 버스터미널을 전전하며 경비원, 주차관리원,
청소부, 배차원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현재 한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자는 ‘임계장 이야기’에서 시급 일터의 팍팍한 현실을 담담히 써 내려간다. 그의 경험은 우리가 외면해 온 노인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 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될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39쪽)
저자가 공기업을 퇴직하고 나이 60에 택한 버스 회사는 그를 말 그대로 ‘임시’로만 취급했다. 일하다 다쳐서 사흘간 병가를 요청하자 회사는 그를 해고한다.
아파도 일을 해야 하는 형편이라 저자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한다.
경비원은 자기가 맡은 동만 지키면 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각종 쓰레기 분리수거, 주차 관리, 소음 분쟁, 주민들의 갑질, 각종 잡역과 심부름들을 감당해야 하는 종합 노동자였다.
그런데 대우는 어땠을까.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122쪽)
책에서 저자는 아파트 자치회장과의 불화를 언급한다. 요즘 우리가 분개한 그 뉴스를 연상하게도 한다. 어쩌면 저자는 그런 뉴스의 불행한 주인공처럼 될 수도 있었다.
결국, 그는 재계약에 실패해서 다른 비정규 노동일을 전전한다. 경비원, 청소원 등.
그의 임계장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낮은 곳에서 모두가 꺼리는 일을 도맡고 있는 늙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검표원, 콜센터 상담원, 편의점 알바, 미화원 등
그가 거쳐 간 일터들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 어디까지 와있는지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책은 곳곳에서 그러한 비정규직 신분의 처지를 회사 규정을 들어 보여준다. 노사의 권리와 의무를 다룬 회사 규정들이 임시 계약직에 가해지는 갑질의 핑계가 되기도 한다.
맨 마지막 10호를 보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이 지정하는 기타의 제반 업무”라는 포괄적 규정이 하나 더 있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은 경비에게 무슨 일을 시켜도 규정 위반이 아니었다. 이런 규정이 갑질을 부르고 경비원을 구속하는 족쇄와 굴레가 됐다.
전에 일했던 아파트와 고층 빌딩은 근거도 없이 갑질을 했지만 대기업은 갑질을 정당화하는 규정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감독자들은 이 규정을 내세워 정규직의 고유 업무에 속하는 일들도 경비원에게 떠넘겼다. (219쪽)
지난 5월 14일 목요일 억울함을 풀지 못해 세상을 등진 경비원의 장례식이 열렸다. 뉴스는 연일 가해자를 성토하고 정치인들은 관련 법을 만들겠다고 외친다.
물론 분명한 가해자가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이 미비했다면 보완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가해자는 나름의 처벌을 받았고 법은 조금씩 고쳐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은 계속 터지고.
그래왔던 것처럼 이 일은 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아,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 이러고 마는 건 아닐까.
SNS에 올라온 저자 조정진의 호소가 눈에 밟힌다.
“이 죽음에 대해 무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초등학생처럼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겨진 피맺힌 유서, 서너 줄 밖에 안되는 마지막 외침을 들어주십시오.”
우리는 임계장이 머슴 취급받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강대호 북칼럼니스트dh9219@gmail.com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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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 실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다. ‘고려대 국어사전’에 의하면 “이전에, 부농이나 지주에게 고용되어 그 집의 농사일이나 잡일을 해 주고 품삯을 받는 사내를
이르던 말”이다. 주로 옛날이야기나 문학 작품, 혹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들어본 말이기도 하다.
허구의 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에서 내가 이 단어를 들어본 건 약 20년 전 한보 정태수 회장이 회사 임원에게 ‘머슴’이라고 불렀던 이후로는 처음이다.
서울 강북의 모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을 ‘머슴’ 취급했다. 그 경비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고. 한 생명이 세상을 등진 뒤에야 사람들은 자기의 모습을 돌아본다.
그런데 이 죽음 이전에도 아파트 경비원이 부당한 대우 때문에 자살한 사건들이 있었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약자에게 가해진 강자의 갑질에 분노했었다.
다만 그때뿐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경비원이 세상을 스스로 등진 뉴스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어떤 이는 경비원들의 ‘불안정한 고용구조’를 지적한다.
어떤 이는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상대적 강자의 갑질에 분노한다.
한편,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내게는 불안정한 노년 노동시장을 들여다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노동연구원 연구에 의하면 노동시장에서 완전 은퇴를 위한 경제적 준비가 완료되었거나 준비 중인 사람들은 전체 중장년의 41.4%라고 한다.
물론 은퇴연령이 되기 전에 연금을 조기에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 소액에 그쳐서 노후 안전망으로서는 아직 부족하다.
통계가 말하듯 상당수 중장년이 준비를 채 하지도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한다. 그들 상당수는 ‘임계장’과 비슷한 길을 밟으며 ‘계약직 노인 노동자’의 삶을 전전한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로 ‘임계장 이야기’를 쓴 실제 저자가 버스터미널에서 일할 때 주변에서 그를 부르던 이름이다.
저자 ‘조정진’은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공기업 사무직으로 38년간 일하다 퇴직한 60세 노동자이다.
‘임계장 이야기’는 그가 생계를 위해 시급 노동의 세계에 뛰어들면서 쓰기 시작한 노동일지로 3년간 아파트, 빌딩, 버스터미널을 전전하며 경비원, 주차관리원,
청소부, 배차원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현재 한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자는 ‘임계장 이야기’에서 시급 일터의 팍팍한 현실을 담담히 써 내려간다. 그의 경험은 우리가 외면해 온 노인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 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될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39쪽)
저자가 공기업을 퇴직하고 나이 60에 택한 버스 회사는 그를 말 그대로 ‘임시’로만 취급했다. 일하다 다쳐서 사흘간 병가를 요청하자 회사는 그를 해고한다.
아파도 일을 해야 하는 형편이라 저자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한다.
경비원은 자기가 맡은 동만 지키면 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각종 쓰레기 분리수거, 주차 관리, 소음 분쟁, 주민들의 갑질, 각종 잡역과 심부름들을 감당해야 하는 종합 노동자였다.
그런데 대우는 어땠을까.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122쪽)
책에서 저자는 아파트 자치회장과의 불화를 언급한다. 요즘 우리가 분개한 그 뉴스를 연상하게도 한다. 어쩌면 저자는 그런 뉴스의 불행한 주인공처럼 될 수도 있었다.
결국, 그는 재계약에 실패해서 다른 비정규 노동일을 전전한다. 경비원, 청소원 등.
그의 임계장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낮은 곳에서 모두가 꺼리는 일을 도맡고 있는 늙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검표원, 콜센터 상담원, 편의점 알바, 미화원 등
그가 거쳐 간 일터들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 어디까지 와있는지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책은 곳곳에서 그러한 비정규직 신분의 처지를 회사 규정을 들어 보여준다. 노사의 권리와 의무를 다룬 회사 규정들이 임시 계약직에 가해지는 갑질의 핑계가 되기도 한다.
맨 마지막 10호를 보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이 지정하는 기타의 제반 업무”라는 포괄적 규정이 하나 더 있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은 경비에게 무슨 일을 시켜도 규정 위반이 아니었다. 이런 규정이 갑질을 부르고 경비원을 구속하는 족쇄와 굴레가 됐다.
전에 일했던 아파트와 고층 빌딩은 근거도 없이 갑질을 했지만 대기업은 갑질을 정당화하는 규정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감독자들은 이 규정을 내세워 정규직의 고유 업무에 속하는 일들도 경비원에게 떠넘겼다. (219쪽)
지난 5월 14일 목요일 억울함을 풀지 못해 세상을 등진 경비원의 장례식이 열렸다. 뉴스는 연일 가해자를 성토하고 정치인들은 관련 법을 만들겠다고 외친다.
물론 분명한 가해자가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이 미비했다면 보완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가해자는 나름의 처벌을 받았고 법은 조금씩 고쳐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은 계속 터지고.
그래왔던 것처럼 이 일은 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아,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 이러고 마는 건 아닐까.
SNS에 올라온 저자 조정진의 호소가 눈에 밟힌다.
“이 죽음에 대해 무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초등학생처럼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겨진 피맺힌 유서, 서너 줄 밖에 안되는 마지막 외침을 들어주십시오.”
우리는 임계장이 머슴 취급받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강대호 북칼럼니스트dh92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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