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25년 연마, 퇴직 후 인생 2막을 연 직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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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새 인생 개척 소시민 이야기] 서예&캘리그라피, 경석서예연구소 김판수 대표
서예는 글자 예술이다. 처음엔 '따라 쓰기'를 하고, 기본기가 쌓이면 자신의 미적 감각을 살려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은퇴 후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취미 삼아 서예교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 생활 중 취미로 서예를 배우기 시작하여 장장 25년 동안 갈고 닦아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 부문 특선까지 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은퇴 후에 서예연구소를 개설한 김판수 서예가를 지난 3월 만났다. 취미를 인생 2막으로 연결한 사례다.
- 퇴직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퇴직을 앞둔 시기에는 그동안 직장 생활 속에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는 홀가분함과 퇴직이란 단어가 벌써 나에게도 찾아오는가 보다 하는 아쉬움, 퇴직 후에 새롭게 맞이하는 다른 생활에 대한 설렘이 교차하면서 퇴직 후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염려스러웠던 생각이 납니다.
퇴직하고 1년이 지나면서 혹시 필요할까 싶어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어요. 대전대학교를 매주 토요일에 등교해서 캘리그라피 서예지도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오랫동안 배웠던 서예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그냥 썩히기가 아까웠죠. 그리고 후학을 지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서예연구소를 개설했어요. 2021년 3월경 조그마한 상가를 임대했고, 지금의 서예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노인복지관, 주민자치센터 강의를 다니면서 지내고 있어요."
- 서예 공부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1993년 봄쯤 제가 살고 있던 집에서 가까운 서예학원에서 전통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취미생활로 했었죠. 이게 제 적성에 맞더라고요. 서예 공부를 하면서 공모전에 출품도 하고 상과 상금도 받으니까, 일종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취미 활동을 통해 열매를 맺고 생산적으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어야 오래 간다는 걸 알았어요."
▲ 서예실에서 교육생들이 각자 글씨 연습을 하고 있다. | |
ⓒ 김판수 |
- 캘리그라피는 따로 배우신 건가요?
"캘리그라피는 서예 공부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돼요. 글씨의 연관성이 있고 또 서예의 한 종목이거든요. 캘리그라피는 우리 말대로 옮기면 '아름다운 손글씨' 정도로 표현할 수 있어요.
저는 2019년 대전대학교 서화문화원연구소에서 강좌하는 전문지도자과정에서 배웠어요. 캘리그라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성어, 의태어예요. 의성어면 소리를 언어로 표현해야 하므로 예를 들어 아기 고양이가 '야옹' 하면 그 귀여운 모습을 글씨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글씨를 쓰는 사람은 절대 급하게 가면 안 되고 천천히 그리고 시간과 세월이 가면 글씨도 같이 익어가요."
- 서예연구소를 개원하신 과정을 말씀해 주신다면?
"퇴직 후 누구나 제2 인생을 설계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더라고요.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하면서 지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저는 처음에 취미로 배웠던 서예가 세월이 흘러 전문적 지식이 되었고, 그냥 썩히기에는 너무나 아까워서 후진양성을 하고 나 자신의 정서적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 같아서 서예연구소를 개설하게 되었어요.
캘리그라피 서예지도사 1급, 한문한자교육지도사, 학교폭력예방 상담사 1급, 미술심리상담사 1급 등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여 서예실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서예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예술이 아닌지라 몇십 년 오래도록 다양한 서체의 법첩(法帖, 옛 명필 글씨 모음집)을 공부하고 습작해야 해요. 각종 공모전에도 출품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기량을 연마해야 서예실을 개원할 수 있어요. 지금도 '인서구노(人書俱老, 사람과 글씨가 함께 늙는다)'의 고사를 생각하며 서예의 근본 이치를 깨닫기 위해 쉼 없이 공부하고 있어요."
- 서예를 왜 하시는 건가요?
"어디를 가든지 글씨가 사람과 같이 따라다니잖아요. 書如其人(서여기인), 글씨는 곧 그 사람이다. 내 이름을 어디에다 쓰려고 하면 좀 더 멋있고 아름답게 쓰고 싶잖아요. 그래서 글씨를 배우는 거고, 서예를 하게 되면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어요. 인내력이 길러지면서 지구력도 생겨요. 유년기에 서예를 배운 아이들이 성장하면 학습 능력이 좋아지고 두뇌 계발에도 좋아요. 서예는 문자를 통한 예술이거든요. 문자를 늘 접하며 문자를 보고 느껴야 하기에 문자를 터득하면 마음의 양식이 쌓이고 성장기 인격 형성에도 큰 도움이 돼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과 많이 어울렸던 시기에 그냥 세월만 보내는 것보다는 무언가 배우고 익히는 취미 활동을 통해 자기를 계발하고 평온하게 정신을 수양할 수 있어서 배우게 되었어요. 다행히 제 적성과 딱 맞았던 거죠."
- 이 일을 해보고 싶다면 어떤 준비를 미리 해야 할까요?
"서예는 인성을 동반한 예술이기에 서예를 하면 마음이 안정되며 잡념이 없어지므로 권하고 싶은 취미 생활입니다. 우선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부터 하고 혹시 스트레스나 권태감이 올 때는 잠시 쉬었다가 해도 돼요. 자격증 취득을 서두른다거나 이 일을 한다고 해서 어떤 결과를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냥 취미생활로 꾸준히 하다 보면 지도하는 선생님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잘 인도해 주실 겁니다. 서예 공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인 지라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 서예연구소 운영 중 힘든 일은 없으신가요?
"서예연구소 운영은 힘들지는 않아요, 물질적인 욕심만 버리면 돼요.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글씨를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지요.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을 벗으로 삼고 교육생으로서 같이 敎學相長(교학상장) 하면서 함께 수양하고 노후를 보내는 것이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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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판수 서예가의 전서체(왼쪽부터), 예서체, 해서체 작품 | |
ⓒ 김판수 |
- 사업자금과 수입은 어느 정도 되나요?
"사업자금은 조그마한 규모의 상가 보증금, 월 임대료 그리고 냉장고, 책상과 의자 등 간단한 집기류 정도만 있으면 돼요. 수입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은퇴 후의 수입은 용돈으로 필요한 만큼과 작가로서 작품 활동할 수 있는 비용 정도만 벌면 된다고 생각해요. 물질을 쫓아가다 보면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은퇴 후 2인 가족 월평균 생활비?
"생활비는 은퇴 전부터 준비하고 설계한 연금으로 기초생활비 정도로 만들었고요. 또 제가 서예연구소에서 얻은 수입은 작품 창작활동과 여가 생활하는 데 쓰고, 남는 금액이 있으면 아내와 함께 쓰고 있어요."
- 전망은 어떨까요?
"서예는 창업을 목표로 시작하면 안 돼요. 돈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먼저 취미 생활하는 정도로 시작해야 하고, 차후 세월이 흘러 작품활동을 하고 훌륭한 작가가 되면 명예와 함께 강의도 하면서 노후를 행복하게 지낼 기회가 생길 수도 있어요. 서예는 노후에 좋은 직업이 되고, 취미생활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학문적 예술이에요. 그런 면에서 전망은 나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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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판수 서예가는 서예와 더불어 전각(낙관 도장)에도 조예가 깊다. | |
ⓒ 김부규 |
- 인생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직장을 다닐 때는 매달 받는 봉급으로 안주하면서 동료들과 어울리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신경 쓰다 보면 세월은 번개같이 훅 지나가 버려요. 요즘 60대를 '신중년'으로 지칭할 정도로 은퇴 후에 정신과 육체가 너무 건강하여 다시 재취업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나에게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오락으로 끝나거나 즐기기 위주의 취미 생활보다는 직장생활 할 때 짬을 내서 목표가 있고 동기 부여가 되는 생산적인 취미를 찾아보는 게 좋아요. 아니면 재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에 도전해 보세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를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든 시도해 보면 본인에게 잘 맞는 것들이 있어요. 1~2년 후면 반드시 찾을 수 있어요."
['경석(耕石)' 김판수 서예가]
- 2019년 6월 말 직장 정년퇴직
- 2021년 3월 경석서예연구소 개원
- 자격증 : 한문·한자지도사(2018년), 캘리그라피 서예지도사 1급(2019년) 등 다수
- 한국미술협회 부천지부 감사 역임, (현)부천미술협회 운영위원 및 이사, 서예문인화협회 운영 및 이사, 예솔회 회원 등
- 전시 및 수상 경력 :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2019~2023),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특선(2019),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대상, 초대작가(국회의장상, 2006), 서울인사동 비엔날레 운영위원 역임(2021, 2022), 경인미술대전 심사위원(2023), 한·중·러·일 초대작가교류전시회 등 다수 참여
기사출처: 오마이뉴스,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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