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인생은 황혼기, 봉사는 청년기...구로구 맥가이버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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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박지영 기자] 우리는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모두가 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사회복지가 필요하고, 복지 체계를 잘 갖춘 나라에서 살길 바란다. 한국도 선진국이긴 하지만 여전히 공공복지 행정이 닿는 범위는 한정적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변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건강한 시민들이 많다. 복지행정의 빈 곳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민간 자원 활동가들이 틈새를 메우고 있다. 봉사자들은 그들의 활동을 소소하다고 말하지만, 그 행동들은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사회 안정에 끼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40년 봉사 기록을 오늘도 갱신하고 있는 '구로구 맥가이버봉사단' 단원들
구로구에는 430개의 봉사단이 있다. 이중엔 명목상 유지되는 단체도 있다. 어떤 일이든 오랜 시간 처음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더군다나 대가나 영예도 없는 봉사라는 영역에서 항상심을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를 돕고 있다’라는 자부심을 동력으로 늘 처음같이 봉사하고 계신 분도 많다. 그중 조그마한 선의로 시작한 봉사 활동을 인생 황혼기까지 이어오고 있는 백발의 천사들을 만나봤다. 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가진 구로구 맥가이버봉사단과의 만남엔 맥가이버봉사단 조재화 단장, 서복례 총무, 구로구 의정회 황규태 봉사단장이 참여했다. (이하 개별 표기 생략)
구로구 맥가이버봉사단. 사진=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구로구 맥가이버봉사단 소개 부탁한다.
구로구 맥가이버봉사단(이하 ‘봉사단’)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봉사자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을 돕겠다는 뜻을 모아 만든 단체다.
2006년에 지역 주민 새마을운동이 있었다. 이 활동 종료 후에도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희망하는 지역 주민들이 많았다. 당시 새마을운동 협의회장을 맡은 저(현 봉사단 단장)와 부녀회장(현 봉사단 총무)을 주축으로, 인테리어, 도배, 보일러, 전기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을 섭외했다. 또 재정적인 지원, 즉 식사나 물품을 제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도 섭외했다. 그렇게 2008년에 25명의 봉사단원을 모집해 2009년 3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 왜 맥가이버봉사단인가.
처음에는 서울형 집수리봉사단으로 움직였다. 서울형 집수리봉사단이라 처음에는 벽지도 지원하고 장판도 지원해 주더니, 어느 날 갑자기 지원이 끊겼다. 하던 봉사를 안 할 수는 없어 봉사단 단장이 지원한 돈으로 봉사를 이어갔다. 서울형 집수리봉사단 사업이 끝날 즈음 단원들과 식사하는 중에 이름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
구로구맥가이버봉사단 이름은 2012년부터 사용했다. 봉사단 새 이름 후보도 많았는데, 부단장이 낸 맥가이버란 의견에 모두 찬성해 봉사단 이름이 됐다. 맥가이버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매주 토요일 인기리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다. 이 시대를 산 남자 대부분은 맥가이버처럼 일상의 간단한 도구와 물리학 원리를 이용해 뭔가를 고치고 해결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우리도 고쳐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적합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주거 개선 활동을 하고 있는 봉사단 사진=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지금까지 어떤 일들을 했나.
현 기준으로 저소득 가정을 위한 집수리 봉사활동 728회, 식사 취약계층을 위한 사랑의 밑반찬 봉사활동 255회, 사랑의 김장 나눔 봉사활동 15회, 어르신 점심 대접 및 어르신생신잔치 봉사활동 506회, 찾아가는 치매 검진 자원봉사 활동 총 206회, 안양천 환경정화 봉사활동 총 54회 등이다. 소소한 봉사활동은 셀 수 없이 많다.
사랑의 김장 나누기 활동에 참여한 봉사단. 사진=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엄청난 기록이다. 수혜 대상이 10만 명을 훌쩍 넘는다고 들었다. 10여 명의 봉사단원으로는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활동 초기 구로구에는 19개 동이 있었다. 현재는 16개 동이다. 원래 구로 6동을 주축으로 움직이다가 합동되면서 구로 4동 중심으로 활동했다. 구청이나 사회복지재단에서 추천받은 분들 주거 개선(집수리) 해드리고, 도배, 장판 교체, 싱크대 수리, 방충망 교체 등을 맡아 처리했다.
2010년에 구로 4동 집수리 봉사를 해야 했는데 이 집이 장애인 집이었다. 어른도 장애가 있었고 어린 학생도 자폐였다. 살림집인 데다 바꿔야 하는 가구도 있어 봉사단 단독 진행이 어려웠다.
당시 구로구 의정회가 티뷰크사회복지재단(이하 ‘티뷰크’)과 봉사 협약을 맺어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의정회 전 봉사단장께 부탁드렸다. 봉사해야 하는데 지원해 줄 수 있는 곳이 없겠냐고. 그때 우리를 티뷰크와 연결해 줬고 티뷰크 지원을 받아 집수리를 마쳤다. 그렇게 티뷰크와 인연이 닿아 그해 11월 상호 간 봉사 협약을 맺었다. 구로구 의정회 봉사단(구로의정봉사단)도 이때부터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주거 개선 활동을 하고 있는 봉사단. 사진=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맥가이버봉사단의 한 해 일정은 어떻게 되나.
봉사단은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2009년부터 현재까지 매주 1회 구로구 내 한부모 가정, 홀몸 어르신 및 장애인 가구 등 주거환경 개선비 마련이 어려운 저소득층 가구 대상으로 집수리 봉사 활동을 한다. 같은 해부터 연 1회 사랑의 김장 나눔을 하고 있고, 2011년부턴 16개 동주민센터를 순회하며 ‘찾아가는 치매 검사’활동도 하고 있다. 밑반찬 봉사도 2013년부터 월 2회씩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나눔의 밥상, 사랑의 말벗 봉사, 깨끗한 동네 만들기 봉사 활동, 장학 활동 등을 3월에서 11월까지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배달 중 음식이 상할 수 있어 밑반찬 봉사만 예외적으로 8월엔 쉰다.
밑반찬 봉사 활동. 사진=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활동 영역이 정말 폭넓다. 봉사단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후원은 있나.
후원은 따로 없다. 봉사단 활동 초기에는 봉사 단장이 개인재산을 털어 운영했다. 봉사 단원 식대, 차비까지 모두 단장이 충당했다. 봉사단으로 이름도 알려지고 경력이 쌓인 현재도 봉사단원들은 말 그대로 자원활동가로 참여 중이라 점심만 제공받는다.
우리 봉사단은 표창도 많이 받았고 방송에도 많이 노출됐다. 그래도 법인이 아니어서인지 후원 제안이 들어오진 않았다. 법인이 되면 처리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는데, 우리 목적은 순수 봉사라 주객이 전도될지 우려해 법인으로 전환하진 않았다.
밑반찬 봉사와 주거 개선 활동은 티뷰크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르신 음식 대접을 하는 ‘나눔의 밥상’은 원래 세 군데서 제공했는데, 코로나 이후 지원이 끊겨 현재는 한 군데서만 제공하고 있다. 치매 봉사의 경우엔 치매안심센터에서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봉사한다. 당일 참석 어르신이 400여 명 정도다.
찾아가는 치매검진 봉사활동에 참여중인 단원. 사진=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봉사도 대부분 해본 사람들이 한다. 다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
봉사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의 봉사 경력은 대부분 40년이 넘는다. 맥가이버봉사단 활동의 경우, 삼계탕 한 그릇 얻어먹고 시작한 사람도 있고, 그냥 놀러 오라고 해서 놀러 왔다가 봉사단에 합류한 경우도 있다.
대부분 직장 내에서도 봉사 활동을 했는데, 지역 봉사로 눈을 돌린 계기는 대개 새마을운동이다. 현 60대부터 80대까지는 학생 시절 새마을 운동에 참여했던 기억이 강하다. 이 활동을 통해 지역을 변화시켜 보자는 다짐도 큰 세대로, 봉사단원 중 다수가 1988년, 1989년에 새마을 지도자로 활동했다. 봉사 활동 역시 습관이라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 봉사 영역이 다 전문적이다. 활동에 어려움은 없나.
봉사단원 대부분이 복지사 자격증, 요양 보호사 자격증, 심리 상담사 자격증 등 활동 영역 관련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대부분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고, 기술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전문인이 동행한다.
2013년부터 시작한 밑반찬 봉사를 예로 들면, 봉사단 내 직접 식당을 운영하는 분도, 조리사 자격증을 갖고 계신 단원도 있다. 처음에는 봉사단원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실습도 하고, 직접 와서 해주기도 하셨다. 아무래도 대량으로 조리해야 하다보니 메뉴를 구성하는 것도 맛을 내는 것도 힘든 점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이젠 다들 전문가 수준이다. 맛도 좋다.
밑반찬 하면서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게 우리 밑반찬의 장점이다. 어르신들은 조미료가 가미된 음식을 드시면 뼈가 빨리 삭는다. 최대한 자연 재료로만 만든다. 현재는 한 번에 180개를 만든다. 아쉬운 건 아직 반찬을 만들 공간이 구로구에 없어서 지정일에 금천에 있는 복지재단 공유 주방에 가서 만들어 온다. 규모가 작아도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지역구 내에 있었으면 좋겠다.
밑반찬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다듬는 봉사단. 사진=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단원들 모두 지금까지 쌓은 봉사 점수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 같다.
봉사단원 중 봉사 시간 오천 시간을 넘긴 사람이 반이다. 오천 시간 이상 하면 구로구청에서 나무에 새긴 봉사왕 명패를 달아준다. 원래 구청엔 오천 시간 봉사자가 최대였는데, 우리 봉사단에서 제안해서 일만 시간 이상도 생겼다. 자원봉사 히어로라고 하는데, 우리 봉사단원 대부분 일만 시간을 넘거나 근접했다. 이것도 1365자원봉사포털이 전산화되면서 가능했고 이전 봉사 활동 시간은 포함되지 않았다.
구로구 최고 영예의 상이 있다. 구로구민상 봉사 부문으로 맥가이버 봉사단원 6명이 이 상을 받았다. 구로구 페스티벌에서 주민들 앞에서 받는다.
사진=구로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봉사하면서 개선하고 싶었던 행정상의 아쉬움이 있다면.
주거 환경 개선, 밑반찬 배달 등을 하면서 그분들께 듣는 애로사항들이 많다. 들은 대로 주민센터에 전달을 해주는 데 반영이 잘 안되는 경우들이 있다.
올해부턴 집수리 봉사 때 후원받은 쌀 10kg을 함께 가져다드렸다. 한 번에 나눠 드릴 수도 있지만 봉사 활동을 위해 방문을 하다 보면, 여러 곳에서 지원받은 라면, 쌀, 김치 이런 것들이 몇 년째 묵혀두는 경우가 많다. 유통 기한이 지난 음식을 잘못 드시면 안되기도 하고, 악취도 나 안 주니만 못한 경우들이 생긴다. 정말로 필요한 분께 제때 골고루 나눠드려서 아깝게 버려지는 것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 공무원들이 지역구 상황을 세세하게 모두 다 파악하고 있긴 어렵다. 동네마다 지역을 잘 알고 계신 통장님들이 계시니, 이분들과 잘 얘기해서 이런 부분들을 시정 및 개선해 줬으면 좋겠다. 자주 찾아가 봐야 문제점이 뭔지 보인다.
기증받은 쌀을 전달하고 있는 봉사단. 사진=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봉사단원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봉사자들은 봉사에 대한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내 즐거움과 자부심에 참여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타인을 돕겠다는 선한 마음이 먼저 앞섰을 뿐, 봉사단 역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적어도 봉사 활동에 필요한 교통비 정도는 지원이 됐으면 좋겠다. 넓은 지역구를 차량 도움 없이 다니는 건 불가하다. 밑반찬이나 물품도 배달해야 하다 보니 주차가 어려운 지역에서 벌금을 감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치구마다 기준이 다르고, 타 지역구와 형평성 원칙도 지켜야 하니 서로 눈치보다 개선되는 게 없다. 서울시에서 하는 봉사는 일당을 준다. 그러다 보니 무료로 봉사하는 봉사단의 경우엔 참여가 아주 저조하다. 적십자의 경우엔 자원봉사자에 대한 예우가 다른 곳보다 낫다. 시간 단위를 100시간 200시간 등으로 세분화해서 자원봉사자를 독려해 주고, 순수 봉사자들을 위한 보상에 신경 쓴다.
12월 5일은 자원봉사자의 날이다. 법정기념일이다. 이날 시상식도 있는데, 상을 타면 3년 이내에는 제도적으로 다시 받을 수 없다. ‘국민의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참여를 촉진하고 자원봉사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날’인데, 사기 진작이 되지 않는다.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봉사단 내에서도 단원들 사기를 높이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다. 혜택을 받는 분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한 비용으로 생각하고 행정적으로 실질적인 지원이 뒤따랐으면 좋겠다.
□ 봉사단이 현재 직면한 문제는.
소규모로 시작했던 봉사단이 어느새 15년을 훌쩍 넘겼다. 초창기 봉사단원 대부분이 50, 60대로, 대부분 일과 병행하거나 퇴직한 분들이었다.
현재 최고 연장자가 80세, 가장 젊은 봉사단원이 40대 후반이다. 2024년 현재 15명의 봉사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현재 회원들 몸들이 다 조금씩 안 좋은 상태라, 지속적인 봉사단 운영을 위해 젊은 세대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로 연락하면 되나. 올해 마지막 활동은 11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다. 봉사 참여나 관련 문의가 있다면 구로구립 궁동종합사회복지관 자원봉사 담당 부서로 연락하면 된다.
사진=구립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기자도 2008년도부터 쭉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처음 참여했을 땐 반나절을 넘는 봉사 활동에 교통비와 식대 포함 하루 팔천 원을 받았다. 현재는 만삼천 원을 받는다. 현재 차비는 기본 천 오백원, 김밥도 평균 오천 원이다. 기자 역시 보람과 자부심, 성취감으로 봉사활동을 놓지 않고 지속하고 있다.
실제 봉사가 필요한 곳에 새로운 분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상황이 여의찮아서, 의지가 없어서도 그렇겠지만 제도적으로 보조할 부분은 없는지, 개선해야 하는 건 없는지 진지하게 짚어봐야 할 때다.
기사 출처 : 이모작뉴스, 박지영 기자, 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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