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일, ‘봉사활동’ 아니고 ‘일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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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철씨(가명·76)의 일과는 ‘셀카 찍기’로 시작된다. 얼굴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 지하철 택배원 단톡방에 올려 출근 도장을 찍는다. 비슷한 시간에 지하철역으로 출근하는 다른 ‘공공근로자’들과도 눈인사를 나눈다. 안씨는 3년 전부터 ‘지하철택배’를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는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노인일자리 사업)’ 중 하나다.
36년간 직장 생활을 한 안씨는 16년 전 은퇴를 했지만 이후로도 일을 놓아본 적은 없다. 퇴직 직후에는 정부가 일자리를 알선하는 취업센터를 통해 영업 분야 일을 하기도 했다. 한 달에 100만원 남짓 벌었는데, 경력과 적성에 맞지 않고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몸도 상하고 마음도 지쳤다.
나이가 들면서 오른쪽 다리를 다쳐 빨리 걷거나 활동적인 일을 하는 게 점점 버거워졌다. 적당한 일자리를 찾던 중 대한노인회 서울연합회(대한노인회)를 통해 지하철 택배원을 안내받았다. 꽃·현수막·휴대전화 같은 가벼운 물품을 취급하는 일이라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 먼 곳까지 가기 힘든 안씨는 주로 서울 지하철역 인근 배송만 맡는다.
단톡방에 다른 구역을 담당하는 택배원들의 ‘배송 접수’ 글이 틈틈이 올라왔다. 꽃집에 도착해 출발지와 목적지, 자신이 받은 배송료를 공유하면 대한노인회에서 정보를 취합해 월수입을 파악한다. 배송료 중 15%는 대한노인회에 운영비 명목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85%는 택배원의 순수익이 된다.
8월13일 안씨는 서울 마포구 공덕역 대합실에 앉아 지하철택배 업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수철씨의 배송 조건에 맞는 일거리가 좀체 접수되지 않았다. “요즘같이 더울 때는 사람들이 꽃을 안 사요. 저는 남들만큼 다니질 못하다 보니 며칠 동안 통 일을 못했네요.” 그날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안수철씨는 단 한 건도 배송하지 못하고 퇴근을 해야 했다. 이날 그의 수입은 0원이었다.
노인일자리인 지하철택배를 하면 정부 보조금이 기본급처럼 월 25만원씩 나온다. 여기에 ‘일한 만큼’ 배송료 추가 수입이 생긴다. 배송 거리에 따라 배송료가 달라지는데 대개 단거리 배송을 하는 안씨는 1건당 표준 배송료인 8000원의 85%인 6800원을 번다. 5월처럼 꽃 배달이 많은 때엔 하루 최대 세 건씩 배송할 때도 있지만 한여름 같은 비수기에는 한 달 수입이 정부 보조금을 포함해도 30만원 내외다.
8월13일 배달 업무를 기다리던 안씨는 작업용 조끼 주머니를 뒤적여 며칠 전 가위로 오려서 넣어놓은 신문 기사 한 조각을 꺼냈다. 전문성을 갖춘 60대 이상 퇴직자들을 재고용하는 기업들에 대한 기사였다. 안씨는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한 노인들이 떳떳하게 일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다시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
그런 그에게 노인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안씨는 자신의 가방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가방에 삶은 계란이 세 개 있어요. 그게 내 점심이거든. 따뜻한 탕이라도 한 끼 먹고 싶어요. 점심 식대라도 챙겨주면 참 좋겠어.” 안수철씨는 고령 노동자가 ‘경험 많은 숙련 노동자’로 인정받으며 노동시장에서 환영받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안씨에게 시급한 것은 월수입 30만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점심 식비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노인일자리’ 사업
지난 7월25일 통계청이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고령층(55~79세)의 취업 관련 특성을 분석했다. 안수철씨는 전체 고령자(1548만명) 중 3분의 2(932만명)에 해당되는 경제활동인구, 즉 ‘고령 노동자’의 전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공공 취업알선기관(35.7%)을 통해 구직했으며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55.8%)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하기를 원한다(93%). 고령층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단순 노무(23.2%)에 종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안수철씨의 노동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상을 받고 있었으며 수당이나 휴가 보장 등 노동자로서 법적 권리가 보장된다고도 볼 수 없는 불안전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2024년 노인일자리는 총 103만 개에 이른다. 처음 사업이 시작됐던 2004년에 약 2만5000여 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20년 동안 51배가량 늘어났다. 투입된 예산 역시 지난 해 1조5400억원에서 올해 2조264억원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노인일자리는 공적연금 등 노후소득보장체계가 부족한 국내 실정에서 노인 빈곤 문제에 정책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시작됐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정 계층만을 대상으로 한, 전국 규모의, 100만여 개에 이르는 대규모 공공 일자리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일의 성격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공익활동형, 사회서비스형, 민간형이다. 안수철씨가 하는 지하철택배는 ‘민간형’ 일자리에 속한다. 다른 일자리들과 달리 정부의 간접적 재정 지원은 있지만 급여 자체는 매출이나 수익에 따른 보수로 주어진다. 현 정부가 확대하려는 노인일자리 유형이기도 하다.
노인일자리 지원사업은 독특한 성격이 혼합된 일자리 프로그램이다. 사업명부터가 특이하다. 정확한 이름은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인데 ‘노인일자리’ 뒤에 ‘사회활동 지원’이라는 단어가 붙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일부 일자리의 경우 노동에 대한 보상인 ‘소득’이라 말하기 민망할 만큼 적은 금액이 지급되다 보니 이를 대체할 용어가 필요했다. ‘노동’ 대신 ‘노인의 자기만족과 성취감 향상, 지역사회 공익증진을 위한 자발적 봉사’라는 설명이 붙었다. 즉, 유료 자원봉사라는 '사회활동’을 하면 현금 지원으로 ‘예우’를 해주는 형식이 됐다.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노인일자리 중 약 70%에 해당되는 공익형 활동이다. 공원 관리, 경로당 급식도우미, 저소득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환경 미화 등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 이에 속한다. 종사자 평균 연령은 약 76세이다.
노인일자리에서 공익형 활동이 절대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는 이유는 사업의 출발에 ‘노인 빈곤’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모델은 특히 일자리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양적으로 지원 대상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현재도 공익형 활동은 65세 이상이라는 나이 제한 외에 ‘기초연금 수급자’여야 참가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다. 공익형 활동은 ‘공익을 위한 봉사’라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지만 실상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소득 보전 정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23년 7월27일 발표된 ‘제3차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종합계획(2023~2027년)’에서도 공익형 활동을 ‘저소득 어르신들이 노후에도 소득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개편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도의 출발점에 발목이 잡혀, (공익형) 노인일자리는 ‘안정적인 일자리‘로 발전하는 데 뚜렷한 한계를 갖게 됐다. 우선 보수나 활동 시간이 제한적이다. 하루에 3시간, 한 달에 열흘만 일할 수 있어서 한 달 보수가 29만원에 불과하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2022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익형 활동의 경우 경제적 이유로 참여한다는 비중이 다른 일자리에 비해서도 매우 높았다. 특히 참여자 중 여성·고령·저학력자의 비율이 높은데 보고서에서는 ‘더 빈곤할수록 인적자본이 취약하고 그럴수록 공익형 활동에 참여해 더 낮은 활동비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8월12일, 대한노인회 용산지회의 공익형 노인일자리 직무교육 시간에 만난 이순분씨(83)는 초등학교 학기 중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스쿨존 안전관리지도를 한다. 횡단보도에서 ‘노랑 깃발’을 들고 어린이들의 안전한 등굣길을 돕는 일이다. 이전에는 노인일자리로 학교 급식도우미를 했는데 아이들을 좋아해서 비슷한 일에 자원했다. 이씨에겐 등하굣길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고 젊은 학부모와 인사하는 일이 즐겁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몸도 건강하고 이게 생활비라서, 더 일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근무시간을 늘려줬으면” 하는 것이다.
서울 신촌 대학가에 있는 호프집에서 일을 했던 그의 생활비는 기초연금과 노인일자리 수입으로 이루어진다. “잠깐이지만 규칙적으로 밖에 나와서 일도 하고 같은 시간에 일하는 조원들끼리 안부도 묻고 얼마나 좋아요. 좋은 거니까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
하지만 이런 노인일자리가 ‘하나마나 한 노동’ ‘돈을 주기 위해 억지로 만든 노동’이라는 시선도 있다. ‘봉사활동‘이라는 명목과 다르게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제대로 하라’는 민원도 들어오곤 한다.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지 않고 일자리의 양만 늘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 이런 생각은 ‘노인의 노동은 저렴한 노동’이라는 인식으로도 이어졌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일자리 사업에서 노인의 ‘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며 소득(급여)를 지원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노인일자리인 공익형 활동은 실상 저소득 노인들을 위한 소득 지원책이지만 최저임금(2024년 기준 986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지급해왔다. 2004년부터 월 20만원이었던 급여가 2010년대 후반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그 사이 최저임금은 2510원(2004년)에서 6470원(2017년)으로 3배가량 올랐다. 심지어 지난 4월에는 윤기섭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노인일자리 활성화를 위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 노인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 건의안’을 발의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돈을 주는 게 어디냐’는 관점의 접근법이다. 엄연한 ‘일자리’에 ‘봉사’라는 명목을 씌워, 노인의 노동력 전체를 ‘허드레 노동’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외부불경제를 낳았다.
좋은 노인일자리의 조건
이후 고학력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함께 ‘신노년’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기존 공익형 활동의 단점을 보완하고, 은퇴자들의 경력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계기로 2019년부터 ‘사회서비스형’ 일자리가 등장했다. 기초연금 수령 여부와 상관없이 65세 이상(일부 활동은 60세 이상 가능)은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봉사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시간도 늘리고 참여자를 ‘노동자’로 인정해 근로계약서도 체결하도록 했다. 하루 3시간, 한 달에 20일간 일할 수 있으며 월 76만원가량 급여를 받는다.
사회서비스형에 속하는 일자리는 우체국 행정업무 지원, 아동보육시설 도우미, 지하철 승강기안전단 업무 등이다. 하지만 해당 일자리가 공익형 활동과 다른 '시니어들의 경력과 역량을 활용’한 전문화된 업무라고 볼 수 있는지 등 사회서비스형 일자리와 공익형 활동 간 명확한 업무적 차이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만씨(가명·66)는 ‘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인 시니어 승강기안전단원으로 일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감리사로 오래 일했던 김씨는 올해 2월부터 안전모를 쓰고 ‘시니어일자리’라고 적힌 작업 조끼를 입고 낮 12시부터 3시까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근무한다. 노인과 장애인 등 이동 약자들이 승강기를 탑승하는 것을 돕고, 승강기 운행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승객들이 급하게 지하철을 타려다 플랫폼에 발이 끼여 큰 사고가 날 뻔한 응급 상황도 여러 번 도왔다. 그럴 때 역무원을 부르고 초동조치도 한다.
김영만씨는 퇴직 후 1년 동안은 실업급여 등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구직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생활도 망가지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찾던 도서관에서 ‘도서관 봉사단’으로 일하는 어르신에게 “지금 하는 일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거냐”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노인종합복지관에 가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는 ‘좋은 노인일자리’의 조건은 ‘구직정보를 쉽게 알 수 있는 일자리’라고 말했다. 건강 상태나 활동 가능한 시간, 가족관계, 경력 등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의 형태와 노동시간이 달라진다. 하지만 ‘은퇴자’가 된 것은 그 역시 처음이라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부터 모든 것을 직접 찾아나서서 배워야 했다. 이제는 친구들이 김씨에게 일자리 구하는 법을 묻는다. 결국 노년층은 자신을 지원해주는 가족이나 친밀한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어느 지역에 사는지 등에 따라 일자리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달라지고 이것이 노후의 삶의 질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수행기관은 노인복지관(22.5%)과 대한노인회(15.7%), 시니어클럽(15.6%), 종합사회복지관(14%) 등이다. 이곳들을 직접 방문하거나 ‘노인일자리 여기’ 등의 사이트를 통해 일자리 정보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시사IN〉이 수행기관들에 전화를 걸어 노인일자리 사업에 관해 문의했을 때 담당 업무를 맡은 전담 인력을 만나기 어려운 곳이 부지기수였다. “일자리 담당자가 병가 중이라 정보를 안내할 수 없다” “언제 지원 업무가 시작될지 아무도 모른다” 같은 말이 돌아오는 곳들도 있었다.
남기철 교수는 “좋은 노인일자리를 늘리려면 수행기관이나 전담 인력에 대한 투자와 평가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현재 전국에는 수행기관 1300여 곳에서 기관마다 평균 585개 노인일자리를 담당하고 있다(2022년 말 기준). 일자리 사업 규모가 증가하는 수준에 비해 수행기관 수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남 교수는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 방점을 두다 보니 해당 업무를 맡아주겠다는 기관이 있으면 기관의 역량 등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사업을 맡기는 경우도 발생했다. 고령층 노동자를 위한 질 좋은 노동시장 구축을 고민하기보다 그저 취업알선센터에 그치는 곳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시니어 승강기안전단원 김영만씨는 오후 3시 노인일자리 근무가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한다. 그곳에서 건축기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집에 있었으면 그냥 누워서 TV나 보며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그래도 규칙적으로 일을 하니까 수입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기고. 그래서 계속 공부할 힘이 나네요.”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시니어’ 업무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안전모 쓰고 마스크를 끼고 있는데도 지하철에서 내리던 지인이 저를 알아보고 ‘네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어?’ 하는 눈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게 어때서!‘ 했죠.”
기사출처 : 시사N, 김다은 기자,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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