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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공기업 임원 → 양조장 사장, 3번째 명함 만든 동해소주 오성택 대표의 창업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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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경퇴직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111회 작성일 24-09-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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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쟁이가 고향에 내려와 양조장 사장이 되기까지.

기사 내용

 

 

 

“제조업은 인건비 외에 원부자재 비용이 기본적으로 들어갑니다. 제품이 팔리면 팔리는 대로, 안 팔려도 기본 물량은 생산해야 하니 원부자재 구매 비용이 계속 들어가기 마련이죠. 생산량이 늘어 일정 규모가 넘어가면 이번에는 번 돈으로 생산설비를 증설해야 합니다.  

 

더구나 제조업은 투자나 마케팅을 진행해도 서비스업처럼 피드백이 바로바로 나오지 않고 둔하고 더디게 움직입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눈덩이처럼 계속 쌓이는 효과가 있지만 그전까지는 계속 선투자가 들어가야 해요. 성질 급한 사람은 못하죠. ‘인생을 걸고 길게 보고 가겠다’ 이런 마음이 없으면 힘듭니다.”

 

설악산 미시령 끝자락, 속초시 이목리에 자리 잡은 양조장(설악프로방스배꽃마을농업회사법인)에서 만난 오성택 대표(50)는 제조업의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20년 차 베테랑 사업가 같아 보이지만, 양조장에 발을 들여놓은지 2년이 갓 넘은 ‘초짜’ 사장님이다.

 

기자 출신인 오 대표는 2년 전만 해도 서울의 한 공기업 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안정된 직장, 안락한 도시의 삶을 버리고 고향인 속초로 귀향한 그의 선택은 사실 10년 전부터 꿈꿔온 제2의 인생이다.

 

 

 

 

2라운드 인생을 위해 기자직을 내놓다

 

 

“기자로 일하고 있었을 무렵인 2008년, 한 선배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어요.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정보화마을사업 매니저 자리가 났는데 해볼 생각이 없냐고요. 평소 지인들에게 귀향해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농어촌의 현황을 살펴보고 고향에 내려가 할 일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역특산물 온라인 판매가 중점인 정보화마을사업에 참여하면서 그는 농어민들의 삶과 지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귀농귀촌 사례집을 만들면서 귀향한 사람들의 실제 사례도 직접 보고 들었다.

 

평생 글만 쓰고 살았는데 고향에 내려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지역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했던 그의 결론은 “시골에서는 손으로 먹고살아야 한다, 기술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다.”였다. 그러면서 고향에 내려갔을 때 고향 사람들 덕을 보고 살기보다는 뭔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그는 소프트웨어 저작권협회로 직장을 옮겨 7년간 홍보팀장과 대외협력실장으로 활동했다. 직장 생활은 비교적 순탄했고 부족함이 없었지만 귀향의 꿈을 하루도 잊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직장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퇴직하면 어머니가 계신 고향 속초로 내려가겠다고 집사람과 의견을 모으고 50대 초중반 귀향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실행파일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속초에 내려와 관광객을 상대로 계절음식을 내놓는 음식점을 차릴 계획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이면 고향에 내려와 음식점 자리를 보고 고향 친구들에게 목 좋은 곳이 나오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 여행 겸 집사람과 함께 속초에 내려왔는데 동네에서 막걸리 잔치를 하는 거예요. 전도 부쳐 먹고 얼마나 흥겨운지 아내에게 농담 삼아 '우리 여기 내려와 막걸리 장사할까?' 했더니 선뜻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오 대표는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 사업계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술 제조법도 공부했다. 때마침 막걸리붐(2010년대 초반)이 일어나면서 새 양조장이 많이 생겼고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해 어떻게 새로운 막걸리를 만들고 시장을 공략하는지 지켜봤다.

 

 

 

 

갑자기 찾아온 설레는 기회

 

 

사업 준비 기간이 길었지만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2017년 초, 평소 전통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문의하고 얻어왔던 한국전통주진흥협회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속초시 이목리에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나왔는데 지분을 나눠서 운영해 볼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기존 사장님이 5년 정도 운영하던 양조장인데 탁주, 약주, 소주에 리큐르(혼성주)에 속하는 인삼주까지, 전통주로 만들 수 있는 풀 라인업을 이미 갖추고 있었어요. 문제는 판로였어요. 창업주 사장님이 술을 만드는 데는 전문가였지만 영업을 하는 일은 힘이 부쳤던 거죠. 연세도 있으시고 다른 사업도 하고 계셔서 전적으로 맡아서 운영해 줄 파트너를 찾고 계셨어요. 제품 하나 개발하는데 2500~3000만 원이 들어가는데, 이미 라인업이 갖춰져 있으니 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든든한 힘이 되어 준 '지인 찬스' 

 

 

하지만 재무제표를 받고 자산평가를 한 후 최종 사업 참여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오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었다가 불나방처럼 타 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몰려왔다.

 

마지막 결정의 순간에 오 대표는 '지인 찬스'를 동원했다. 직장 동료, 학교 동기들 중 인생의 동반자처럼 지내온 이들에게 최종 의견을 묻고 이들이 추천하는 전문가를 동원해 사업체를 다시 한번 진단했다. 결론은 '승산이 있다'였다. 지인들 중에는 양조장에 지분을 투자하겠다는 고마운 이들도 있었다.

 

“제가 투자하는 금액 중 절 반을 지인들이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금전적 심리적 안전장치가 생긴 거죠. 저와 지인 지분 51%, 기존 사장님 지분 49%로 최종 합의를 봤고 제가 대표를 맡아 양조장을 운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7년 여름 고향인 속초에 내려와 양조장 운영을 시작한 오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업체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단하는 일이었다. 술을 빚는 과정을 직접 몸으로 익히면서 지속적으로 판로를 점검했다.

 

 

 

 

막걸리도 보릿고개가 있다?

 

 

주력인 막걸리 '속초생탁'은 설악산 등산로 부근 음식점들에 주로 공급되고 있었는데 등산객이 감소하는 겨울철이 되면 수요가 1/3로 줄어들어 매출이 급감했다. 막걸리도 보릿고개가 있는 셈이었다.

 

더구나 막걸리는 유통 기한이 30일 밖에 안되고 출고 직후 5일, 유통 기한 직전 5일을 빼고 나면 실제 막걸리를 팔 수 있는 기간은 딱 20일, 이후에는 반품과 폐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설악산 등산로 외에 속초 시내 음식점으로 거래처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초,중,고 동창회 행사는 무조건 참여하고 막걸리도 협찬했습니다. 고향 속초에서 사업하는 동창들은 대부분 관광 관련 업종이나 음식점, 횟집을 하는 운영하고 있어서 모두 제 고객인 셈이죠. 하지만 말로는 '술 좋다' 해도 주류 냉장고에 진열해 주고 원래 팔던 술을 우리 것으로 대체해 주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취약한 속초 시내 판매망을 개척한 오 대표는 막걸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을 구상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술로 새로운 소주를 론칭하는 계획이었다. 강원도 지역은 1990년대 경월이 대기업에 매각된 후 지역 소주에 대한 자부심이 사라진 상태였다.

 

 

 

 

지역 소주 '동해'를 만들다

 

 

오 대표는 2018년 12월, 지역 소주 '바다한잔-동해'(이하 동해)를 출시했다. 동해는 생쌀 발효 기법으로 증류한 정통 소주 원액과 기존 희석식 소주에서 사용하는 주정을 배합한 '하이브리드' 소주이다.

 

“동해는 네이밍을 통해 확실한 지역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소주의 천연 향은 살리고 주정 특유의 쓴맛은 줄인 소주입니다. 해양심층수로 빚고 병도 색이 안 들어간 투명한 것을 사용해 젊은층, 여성층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으로 출시되었습니다. 그래서 병 디자인에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향도 느낄 수 있도록 했죠.”

 

오 대표가 새로운 소주 동해의 타깃을 젊은층, 여성층으로 잡은 이유는 기성세대가  원래 마시던 소주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좀처럼 바꾸지 않는 반면 젊은층과 여성층은 상대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속초,양양,고성 지역을 넘어 강원도의 대표적 지역 소주를 꿈꾸는 동해소주는 역설적이게도 지역민들보다 외지인들을 우선 공략하고 있다. 식당이나 술집도 지역민들의 단골집보다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에 더 집중하고 있다.  기꺼이 스토리텔러가 되어주는 애향심 강한 지역 점포 사장님들도 많다.

 

“우리 지역에만 나는 소주라며 식당 사장님들이 권하면 옆 테이블에서도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고맙죠. 대기업 소주는 아무리 팔아줘도 소주 회사 사장이 고맙다고 안 하지만 저는 고맙다고 밥도 사고 인사도 하잖냐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합니다.

 

속초는 제주도 다음으로 내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입니다. 여행자들, 특히 젊은층과 여성들이 와서 여행지의 술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동안 내놓을 만한 술이 없었거든요. 안방인 속초를 중심으로 하되 외지인, 젊은층을 통해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시킨다는 게 제 전략입니다.”

 

 

 

 

전국구 진출의 일등 공신, 소주 동호회

 

 

동해소주의 오프라인 시장 전략이 '속초에서 전국으로' 라면 온라인 시장의 전략은 '전국구에서 속초로'이다. 출시 직후부터 쿠팡에서 판매를 시작한 동해소주는 전통주 부분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며 순항하고 있다.

 

“속초에 거주하는 소주 동호회 회원 한 분이 찾아왔어요. 대구에서 동호회 정모가 열리는데 병 디자인이 예쁘다며 몇 박스 구입하시겠다고요. 그 후 대구 지역에서 먼저 온라인 판매가 일어나더니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으로 동해소주를 맛본 타지 고객들이 이제 속초에 내려와 동해를 찾는다. 지역 업소 사장님들도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다며 반갑게 주문을 넣는다.

 

현재 동해소주는 속초/고성/양양/인제 지역 대리점, 강릉/동해/삼척 지역 대리점 외에도 수도권, 원주권역, 부산권역으로 대리점을 확대하고 있다. 막걸리(속초생탁)는 설악산뿐만 아니라 속초 시내 지역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올해 제 목표는 동해 소주가 지역 소주 시장에서 점유율 10%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3월에는 순수 증류주만을 담은 20도대 프리미업급 소주도 출시합니다. 이 술은 최근 고급 매장을 중심으로 확장되는 칵테일 베이스 술을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잘 키워 고향에 보답하고 싶다는 오 대표는 노령자, 경력단절여성 등을 우선 채용하는 사회적기업으로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기쁨을 더하고 슬픈 이에게는 위로가 되는 술을 빚는 직업을 제 2의 인생으로 살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는 겨울바람에 거칠어진 볼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기사출처 : 전성기, 글 안용호 사진 이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