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폐휴지 줍는 노인'이 안 보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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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인생, 준비 이렇게] '노동자 천국'인 줄 알았더니 노인들의 천국이었네
▲내가 거주하는 50세 이상만 거주하는 주거단지. 호주에는 이러한 단지가 많다. ⓒ 이강진
1952년생으로 70대를 갓 넘긴 나는 호주 동해안의 대표적 관광지인 골드 코스트(Gold Coast)에 거주하고 있다. 주택은 50세가 넘은 사람만 주거할 수 있는 단지에 있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실버타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버타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음식을 별도로 제공하지 않고, 아파트 형태가 아닌 수백 채의 단독 주택이 대지에 넓게 퍼져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내 옆집에는 남편을 여의고 이사 온 할머니가 산다. 금실이 좋아 보이는 앞집에 거주하는 부부와는 심심치 않게 마주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인생 황혼기를 맞아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 이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다.
퇴직한 삶이라 시간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외로워서일까, 이런저런 모임을 자주 갖는다. 지난번에는 고기 굽는 연기를 자욱하게 피우며 바비큐 파티를 했다. 며칠 전에는 옆집 할머니가 남편 기일이라며 이웃을 부른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생일 파티를 이웃과 함께 나눈다. 오래전 유행하던 음악을 배경으로 술 마시고 춤도 추며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다.
시도 때도 없이 이웃집에서 연락을 받기도 한다. 이야기를 나눈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이유다. 모임에는 간단한 음식과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 혹은 포도주를 가지고 참석한다. 지금은 익숙해진 호주식 모임이다. 따라서 이웃을 불러도 큰 부담은 없다. 장소만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우리 집에서도 밤늦게까지 떠들썩하게 지낸 적이 두어 번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지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호주 노인들의 삶
이러한 모임을 가질 때마다 호주 사람들은 말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그칠 줄 모른다. 이곳에 정착할 때까지 캐러밴을 가지고 호주 전역을 여행한 이웃은 오지에서 겪었던 이야기가 장황하다. 몇 달 후에 유람선 여행을 준비하는 할머니도 대화에 빠질 수 없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지난 추억과 노년을 어떻게 즐겨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이웃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호주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도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호주에 사는, 내가 아는 80이 넘은 한국 할머니는 주택을 소유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재산도 없다. 그러나 정부가 제공하는 집에 주거하면서 노인 연금을 받으며 풍족(?)하게 지내고 있다. 따로 저축까지 하면서.
우리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자기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재산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노인 연금을 받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호주에서 10년 이상 거주했으며 67세가 되면 대부분 노인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정부에서 주는 노인 연금을 받고 있다. 호주에 이민 올 때(1986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호주는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호주는 '노인들의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즈음 하게 된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노인 연금은 관대한 편이다. 보조금(전기요금, 약값 등)을 포함하면 독거노인에게는 격주로 1144호주 달러(한화 약105만 원 정도) 부부에게는 $1725(159만 원 정도)의 연금이 지급된다.
연간 수입으로 계산해 보니 독거노인에게는 $29,744(약 2683만 원 정도) 부부에게는 44,850달러(약 4045만 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이다. 혼자 지내는 내게도 2주마다 백만 원 이상의 금액이 또박또박 통장에 들어온다. 그리고 월세를 사는 사람에게는 적지 않은 월세 보조비를 별도로 지급한다. 연금이 매년 물가 상승률에 따라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다.
무일푼인 노인에게만 연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자산이 있어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주택이나 소유하거나 땅을 소유하면 금액이 조금은 깎이지만, 그래도 연금을 받는 덴 문제가 없다.
주택을 소유한 독거노인은 314,000불(2억 8300만 원 정도), 부부에게는 470,000불(4억 2300만 원 정도)의 자산이 있어도, 이것을 넘지 않는 한 노인 연금을 최대한 받을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자신이 사는 주택은 '자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백만 불 되는 주택에 살아도 노인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녀의 경제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자녀가 억만장자라도 연금을 받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다만, 수입이 많은 경우에도 받을 수 있는 연금이 삭감된다).
무주택자에게는 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어도 연금을 지급한다. 독거노인은 $566,000(약 5억 1천만 원 정도), 부부에게는 $720,000(약 6억 4900만 원 정도)의 자산이 있어도 여전히 연금을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다. 즉 격주로 한화 약105만 원 정도(독거노인), 약 159만 원 정도(부부)의 연금이 지급된다. 자산이 한도액을 넘어도 노인 연금을 받을 수 있으나, 지급액이 자산 정도에 따라 줄어들 뿐이다.
한국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기를
한국에도 노인을 위한 경제적 도움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제일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들이 폐휴지를 줍는다는 뉴스가 있는 것을 보면 호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경제적인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도 있으니.
우리가 알고 있듯이 호주는 민주국가다. 국민이 정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시간이 많은 노인들이 수많은 단체와 모임에 자주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표권자에게 노인 연금을 삭감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세울 수가 없다. 고관여층에 불이익을 주는 정부는 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호주에서 지내는 동안, 즉 1980년 중반 이후 노인 연금을 줄이려고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오히려 정부에서는 노인들의 표를 의식해서 선거때마다 노인연금 혜택을 늘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예를 들어 최근엔 전기요금 보조비를 비롯해 인터넷 사용과 물가 상승에 상응하는 금액을 보조금이라는 명목을 추가해 나눠 주고 있다.
특히나 호주에는 노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많으며, 이러한 기관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더불어 동네마다 있는 노인 단체들의 정치참여도 활발한 편이다. 그렇기에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크게 공헌했을 것이다. 호주 사람들은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을 떠나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것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호주가 노인들의 천국이라면 여길 천국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호주 사람들의 삶에 녹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호주의 사례를 보며 한국을 떠올린다. 현 정부의 노인 정책, 특히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 복지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일까. 내가 알기로 그에 대한 정책적 고민은 거의 없는 데도, 여전히 70대 이상 노년층의 지지율이 높다는 데에 나는 종종 답답함을 느낀다(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OECD 부동의 1위다).
부디 열심히 살아왔을 한국의 노인들 또한 호주의 노인들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
기사출처 : 오마이뉴스, 이강진 기자,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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