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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바다, 지금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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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경퇴직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680회 작성일 21-01-0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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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근님은 2018년 12월 말 평택해양경찰서에서 정년퇴직하시고,

2021년 1월 현재 (주)신한해운의 선장으로서 구도와 고파도를 오가며 도민들의 소중한 발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여기 최종근님의 인생 2막 멋진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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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며 꿈을 꾸던 까까머리 소년에서 마도로스로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태어나 자라다보니 자연스레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리라 생각했고, 군산수산전문대학에 진학해서 항해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한 후에는 그 당시 1970~80년대의 많이 젊은이들이 한번에 목돈을 움켜질 수 있는 꿈의 직업이었던 마도로스가 되었고,

상선을 타며 바다를 누비며 외화를 벌어들여 한국 경제 부흥기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해양경찰에 입직을 하여 경찰공무원으로 35년 가량 근무하다 지난 2018년 12월 정년퇴직을 하게되었습니다.

경비함정 함장으로 25년 가량 근무하다보니 해경으로 근무했던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에서 지낸 것 같습니다.

바다에서 청춘과 중년을 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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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택한  마도로스의 길


해경으로서의 정년퇴직을 앞두고 적어도 5년 전부터 퇴직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평택해경서 경비함정 함장을 하면서도 근무 일정을 세심히 조율하여 짬짬히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승선필수 직무교육들을 받아서 퇴직과 동시에 바로 재취업 하는데 모든 준비를 다 갖추리라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출동이 잦은 탓으로 애초에 계획했던 7가지의 직무교육을 재직중에 받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서, 출동에서 복귀했을 때 하나씩 받기로 했으나, 그마저도 퇴직할 때까지 출동 스케줄이 많아서 부득이 교육을 다 취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퇴직하자마자 이듬 해 1월에서 2월 중으로 받기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바다와 육지업무를 선택하라면  당연 바다를 선택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해경 35년간 업무상의 이유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적었기에, 더욱이 가족들이 퇴직 후에는 바다에 가지 말고 편안히 휴식을 취하라고 권하기도 해서, 육지에서 소일거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침 해양경찰퇴직지원센터에서 교육비를 지원해준다기에 운전면허 대형 1종을 취득했습니다.(물론 현재 선장으로 근무하므로 대형면허증은 현재로써는 무용지물입니다만)



현실을 맞닥뜨리다


승선필수 교육을 이수하진 못했지만, 누구보다도 선장으로의 재취업에 열망이 많았던 지라, 퇴직 전에도 퇴직지원센터에서 몇 군 데 선박업체의 채용정보를 보내주셨습니다. 업체 사장과 채용건으로 통화를 하며, 저의 지원의사를 강력히 어필했지만, 씁쓸하게도 채용되지는 못했습니다. 사장은 '최종근님 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재취업하려는 의지는 높게 사나, 고위 퇴직공무원을 채용하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라며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이후 센터에서 다른 업체 선장직을 알선해주어 용기를 내어 면접을 보러갔으나 '선상에서 조리 및 허드렛일을 할 줄 아는 40대 젊은 사람'을 희망하고, 저처럼 '엘리트'가 하기에는 일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일해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함장을 하면서 취사를 해본 적은 없었기에 고개를 떨구고 돌아온 경험이 있습니다. 서산지역 대산항이 향후 국제물류 및 국제여객항로 개설 업무 협약 체결 뉴스가 보도되는 들뜨는 분위기에 저는 일치감치 차가운 현실을 맞딱드렸습니다.


설레임이 걱정과 불안으로 바뀌면서 퇴직을 하게되었지만, 그럼에도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2019년 1월 6일부터 약 한달 간 해양수산연수원에서 선장으로써 수료해야 할 7개의 승선필수 직무교육을 받은 후 집에서 쉬면서 센터를 통해 여러 업체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업체에서는 40~50대 젊은 직원을 채용하므로 60세 이후는 선박 승선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안되겠다싶어서 제가 사는 서산, 보령시를 넘어서 전국적으로 저 멀리 주문진과 거문도까지 여수 전역을 항해사 일자리를 알아봤으나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습니다.

퇴직 후 몇 개월을 집에 있다보니 자신감과 열의는 어느덧 불안과  짜증으로 바뀌어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너무 힘들고 불편해졌습니다. 퇴직 전 날까지 매일을 치열하게 빼곡한 하루 일정을 바쁘게 소화해내며 뭔가를 해내던 제가 어떤 규칙적인 일정도 없이 가만 있다보면 자칫 건강까지도 잃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퇴직하니까 그야말로 All Stop 이었고, 바보가 된 것 같았습니다, 퇴직하고 무위도식하는 것은 흡사 '야생마에게 물리는 재갈과 같은 것'으로 느껴졌으며, 하루 빨리 이 상황을 탈출하길 고대했습니다.


부단한 노력끝 에 얻어진 조그만 결실을 밑거름으로

그렇게 무기력했던 몇 달을 보내던 2019년 8월 초, 해수부 운항관리센터의 정부 보조선박인 (주)신한해운에서 여객선 선장직에 일해보겠냐는 제의가 들어왔고, 3개월간 수습기간을 거쳐 10월 말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제가 일하게 된 여객선은 해수부 운항관리센터의 정부 보조선박으로 일 3회(7:30, 13:00, 16:00) 서산의 팔봉산 아래의 구도항과 고파도를 오가는 105톤의 4명의 승무원이 근무하는 크지 않은 배입니다. 해경 재직시 대형 경비함정에 비하면 규모 면에서는 비할 바 안되지만, 평일엔 도민들의 발이 되고, 주말엔 즐거운 나들이를 떠나는 관광객들의 발이 되어주는 이 작은 배를 운행하다보니 일이 고되더라도 막중한 책임감과 보람이 느껴집니다. 이제는 제법 도민들과 친분도 쌓여서 섬어르신들이 6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나이인 저를 "젊은 오빠'라고 불러주어 기분 좋게 웃곤 합니다.


 바다, 늘 어렵지만 내가 사랑하는 곳!

 40년 이상 바다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바다는 아름답지만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해경에 몸담았던 분들이라면 다 아는 얘기했지만, 서해 바다는 세계적으로 캐나다의 펀디만, 프랑스의 생미셸만과 더불어 조석현상이 심한 지역인데가, 조류도 쎄고, 수시로 얘기치 않게 불어대는 거센 바람을 헤치고 배를 운항한다는 것은 어렵고 도전적인 일입니다. 매일 4시 반에 기상해서 6시 반에 장비 시운전을 하고, 7시 반에 첫 배를 띄워 약 45분간의 운행을 마치고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두번 째, 세번 째 운항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선장으로서 책임을 완수하고 귀가할 때면, 오늘도 안전운항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곤 합니다. 동해와 남해의 가시거리와 비교하면 서해는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여, 동해가 물속 10m까지 볼 수 있다면 서해는 1m 정도밖에 볼 수 없기 떄문에 불의한 운항 사고가 발생한다면 인명피해는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상선, 경비함정, 그리고 지금은 여객선 선장으로 바다 위에 있습니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저는 바다 위에 있을 것 같습니다.

영원한 마도로스 최종근은 오늘도 안전운항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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